본문: 에베소서 4장 1~16절
1.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 4장부터 삶에 대한 적용과 권면을 기록합니다. 바울 서신은 대부분 전반부의 신학적 서술과 후반부의 삶에 대한 적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경륜으로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직설법으로 서술한 뒤, 그 서술에 근거하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령법으로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 됨’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 됨’은 전체주의적, 집단주의적 성격을 띈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부족함과 아픔을 품어주면서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것을 말합니다.
1~3절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성령 안에서 행하고, 하나되라는 명령입니다. 4~6절에서는 성도가 하나 되어야 하는 근거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7~10절은 성도의 하나 됨은 각 사람에게 주신 선물의 분량과 주신 선물의 충만한 가치가 하늘에서 주어진 것임을 말합니다.
11~16절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선물을 가지고 각 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랄 것을 말합니다.
2. 신앙 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뚜렷한 기억이 없어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를 몇 번이고 묵상하면, 이 말씀 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2절을 읽으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 없는 제 모습… 온유함이 아니라 판단의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제 모습… 오래 참음으로 용납하기보다 감정을 내세우며, 선을 긋기 급한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런 저를 보면서 부끄러움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부끄러움과 후회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기도하고, 더 엎드리고, 또 다시 결단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떠오르는 죄악된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교회 다니는 사람들 포함)이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합니다. 난 되지만, 너는 안 됩니다. 난 그래도 되는데, 너는 그러면 안 됩니다.
인간의 도덕에서도 말하는 관용 또는 솔선수범(率先垂範, lead by example)조차 행하지 않으면서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 등’을 말로는 참 많이 떠듭니다.
교회와 사회 등 자신이 속한 모든 공동체에 대한 티끌은 참 많이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고민과 문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해결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에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기 위해’ 자기를 쳐 복종시킵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지체들(성도들)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내가 아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순종합니다. (15~16절)
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기 위해 십자가 붙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떠함이 보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입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를 사랑할 수 없는 나, 그를 섬길 수 없는 나를 통해 일하시려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성도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의 치명적 단점을 깨닫고 십자가 붙들고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죄성에 절망하지만, 예수님의 의로움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이 땅의 교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는 곳이 이 땅의 교회입니다.
‘뉴저지주님의교회’에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제가 가장 모자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솔선수범(率先垂範, lead by example)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십자가 붙잡고 자기 생각과 판단이 앞서는 저를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서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에 하나님의 뜻을 포장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한 걸음씩 저와 여러분 또 우리 ‘뉴저지주님의교회’를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뿐입니다.
그렇게 각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원하시는 분량대로 자라가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뉴저지주님의교회’를 세우고 섬겨 나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