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베소서 3장 14~21절
1.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글로 기록한 기도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함, 신실함, 충만함, 영광에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에베소 성도들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붙들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식과 사랑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기도는 인간의 열심에 의한 종교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이 드리는 기도가 쌓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하시는 전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고행(?)일 수 없습니다. 억지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말 그대로 기쁨이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 “죽어도 기도해라. 살고 싶으면 기도해라.”는 강요(?)로 보이지 않습니다.
“살아 있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된다. 생명을 가졌다면 숨쉬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로 보입니다.
2. 기도할 때 예수님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생각하십시오. 기도를 통해 그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결과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뿌리 박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 일 앞에, 그 상황 앞에 여전히 살아서 펄펄 뛰는 나를 십자가 아래에 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네, 16~19절을 위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20절의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기도하여 ‘얻으려 하고, 이루려 하고, 누리려 하는 어떤 것들’보다 ‘더 좋은 것… 땅에서 이루고, 얻고, 누리는 그 어떤 좋은 것들…’을 주실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습니다.
20절의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십자가 구원’ 입니다.
물론, 기도하면서 내가 이 땅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들(네, ‘필요’입니다.)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지고, 이루어진 것들이 ‘내 생각 반대로 되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좀 아쉽지만, 언젠가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사람의 환상과 기대가 아닙니다. 내게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한 ‘하늘로부터 임하는 만족, 감사 ’가 충만해야 합니다.
분명,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내가 얻은 것에 대한 풍성함보다 중요한 것이 진정한 만족과 감사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 좋은 것을 얻어도 감사와 만족이 없으면 또 다시 ‘더, 더, 더’라는 밑도 끝도 없는 탐욕에 시달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3.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진 사람(16절)!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 그 사랑에 뿌리 박고, 심령의 터가 견고한 사람(17절)! 그 어떤 지식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에 대한 깊고 충만한 지식과 지혜가 있는 사람(18~17절)!이 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아직까지도 ‘겉사람, 껍데기 인간의 인생’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면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채우심, 그 충만함이 내 속사람을 향하길 더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날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갈 수록 속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십자가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에 이끌려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로 우리 영혼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찰랑거리고, 찰싹거리는 얕은 영혼의 상태가 깊은 생수의 강처럼 잠잠해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견고함과 깊이가 더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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