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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9월 30일 2021년 목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23장 1~19절


1. 오늘 본문에는 공정한 재판, 안식년과 안식일, 가장 중요한 세가지 절기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종교가 지키도록 강요하는 종교규례가 아닙니다. ‘여호와’라는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 종교에서 정한 종교행위 중의 일부가 아닙니다.

이런 조치가 없으면 기울어진 인간의 본성, 자기 이익에 따라 굽은 결정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제동장치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공평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일반은총의 수준에서 말하는 ‘도덕심, 윤리관’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자아에 기울어진 마음을 가치 중립적으로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공평하고 가치 중립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속고 있거나,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2. 자신이 기울어진 본성과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은 사람은 1~8절이 너무 간절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자신의 도덕심을 고취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지키려 들지 않습니다.

“주님,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라는 영적 두려움으로 모든 일을 대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대상’에게도 ‘십자가에 붙들린 마음’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반대로 ‘원수 같은 대상’조차도 ‘십자가에 못 박힌 심령’으로 대하게 됩니다.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데,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그렇게 이끌어 가시는 기적(이런 게 진짜 기적입니다.)’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이제, 10~19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들은 ‘종교 절기’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진짜 제동장치입니다.

‘안식일, 안식년’을 왜 주셨습니까? 그날 나와서 종교행위 하라고 주신 날이 아닙니다. 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 쉼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아직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을 살기에 땅의 것들을 얻기 위한 수고가 분명 있습니다. 그 수고로 말미암아 지친 영혼과 몸을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안식’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쉬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요? 네, 그냥 내달릴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만큼 얻기 위해 달리게 됩니다. 제동장치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삶을 살 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에게 쉼은 나태함의 연장일 뿐입니다. 진정한 쉼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참 안식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다른 사람들처럼 쉬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안식과 평안을 얻으라는 것을 알지만, 육신도 좀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숨 한번 깔딱 돌리는 것도 나에겐 사치인가…’라는 생각마저 들도록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 민망한(?) 마음마저 가지면서 또 하나님을 바라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이래도 저래도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라고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4. 그렇게 세 가지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을 묵상합시다. 이 속에도 ‘안식’이 녹아 있습니다.

‘유월절(무교절)’은 출애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전적 주권으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생명을 얻고, 홍해를 건넌 사건 등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은 시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맥추절(feast of harvest)’은 말 그대로 ‘수확의 절기’입니다. 구원받은 이후 여전히 땅의 수고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수장절’은 ‘초막절, 장막절(Feast of Harvest)’로 불립니다. 1년의 마지막 절기입니다. 이 기간동안 한 해 동안 수확한 모든 것을 저장하고 마무리합니다. 이 수장절을 통해 영원한 안식, 하나님의 품에서 진정한 영적 풍요와 쉼을 누리는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범죄하여 나의 욕심과 탐욕에 기울어져 인생을 나그네처럼 방황하는 우리가 진정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 분을 통해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 외에는 이 방황과 나그네의 삶을 마무리 지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런 깊은 영적인 묵상과 되돌아봄이 있다면 이대로 살 수 없습니다. 9절의 “나그네 사정을 아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사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nephesh’입니다. ‘영혼’으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즉, ‘지식적으로 나그네의 상황과 형편’을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혼, 전인격, 존재’로 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그네의 사정”이 단순한 역사적, 종교적 지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버리고 이용하며 다른 것에 기웃거렸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세상에서 방황하던 나그네 되었던 너를 기억하라! 나그네의 사정을 잊지 말라!”는 영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 음성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에, 그 분의 십자가에 붙들려 다시 헤매어 방황하는 내 영혼을 붙들어 매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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