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22장 16~31절
1. 계속해서 ‘율법’의 내용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록된 ‘율법’에 관한 내용을 읽으실 때 크게 세 가지를 명심하며 읽어야 합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한량없는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대속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죄인이 대신 제물을 드림으로 용서받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다는 의미입니다. ‘대속의 은혜’는 무작정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어진 것이지만, 값을 이미 치른 것입니다. 죽어야 할 나 대신 ‘제물(예수 그리스도)’이 대신 죽은 것입니다. 이것을 깊이 깨닫는다면 ‘대신 지불된 제물(예수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둘째는 ‘대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자신으로 살 수 없습니다. ‘대신 지불된 제물의 가치’에 대한 감사와 감격에 합당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켜야 할 규범 혹은 축복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셋째는 기록된 ‘율법’의 내용이 약 3,500년 전에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율법을 이해하면 안 됩니다. 특히, 모든 사람이 법 체계 아래에서 생활하는 국가에서 사는 경우는 더 그렇습니다. 약육강식이 당연했던 이런 법이 주어졌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2. 일반 학계에서는 ‘모세 5경’에 기록된 ‘율법’을 보면서 고대근동 지역에서 발견되는 문서와 거기 담긴 법체계와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와 우가릿(Ugarit) 문헌 등’에 ‘모세 5경’과 유사한 규정들이 등장합니다. 약자(과부, 고아, 나그네 등)에 대한 보호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두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약자에 대한 보호와 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모든 인류 혹은 문화권에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악한 자에게도 ‘햇빛, 공기, 비 등’을 비롯한 땅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처럼, ‘일반 은총(보편 은총)’으로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둘째는 율법을 지키는 목적입니다. ‘약자 보호’와 같은 것을 행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종교행위’를 하는 진짜 목적입니다. 타종교에서는 ‘종교 행위’가 ‘구원의 수단’입니다. 그들의 신이 정해 놓은 어떤 종류의 축복을 받기 위한 방편입니다. 반대로 그들의 신이 정해 놓은 어떤 종류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종교 행위’를 합니다. 그들의 신이 정해 놓은 법을 지키려 합니다.
3.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면, 그렇게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그 어떤 가치로도 바꿀 수 없는 십자가 은혜와 생명에 빚진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것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켜야 할, 아니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확히 말씀합니다. 바로 21절입니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입니다.
어쩌면 이 말도 너무 잘 압니다. 너무 잘 알아서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그네’라는 단어를 딱 들으면 ‘당연하지’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머릿 속에서는 설교 한 편이 연상될 만큼 별의 별 종교적 문장과 수식어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삶은 절대 그렇게 안 삽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사람처럼 삽니다.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삽니다. 그저 막연히 다가올 것 같은 죽음! 다가오기는 오는데 저 멀리, 또 나에겐 마치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4. 하나님께서는 엄격한 율법의 잣대를 놓고 위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24절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아닙니다.
“범죄한 인간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육신의 생명이 다한다. 죽음의 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걸 가만히 생각해보면…누구나 과부와 고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고아와 과부’를 바라보아라. 그러면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라는 것이 22~24절에 녹아 있습니다.
25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에 빚진 자, 십자가 은혜에 빚진 자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죽어야 할 나 대신 제물이 대신 죽은 은혜, 영원한 죽음에 처한 나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빚진 사람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 마음으로 빚진 사람을 대하라는 뜻입니다. 채권자의 인격을 짓밟지 말라는 뜻입니다. 빚진 것에 대하여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론, 허랑방탕함으로 빚진 것을 두둔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채무를 갚지 않는 것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합당한 이자는 빚을 빨리 갚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5. 우리 모두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천국을 소망하는 나그네의 마음, 십자가 은혜에 빚진 자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중요한 두가지 사실을 놓치는 순간 모든 것이 종교화 됩니다. 현실에서 받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축복(?)에 취하여 영원하고 절대적인 가치인 십자가를 버리게 됩니다. 진정으로 사모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품’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27절을 가만히 묵상해봅니다. 저에게 있는 유일한 옷, 죄인인 저의 알몸(수치)를 가려주는 유일한 옷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옷, 십자가의 옷’ 뿐인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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