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22장 1~15절
1. 배상에 관한 법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율법에 관한 내용을 설교하고,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율법의 잣대를 그대로 저에게 갖다 대면 저는 목회는 고사하고, 당장 돌에 맞아 죽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올바른 삶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기독교 윤리와 도덕의 관점에 치우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율법 앞에서 대다수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율법의 일부 중에서 자신이 지켰거나, 지키고 있는 것으로 자기 의로움을 삼습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 혹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은혜와 자비를 적용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율법을 남에겐 엄격하게, 자신에겐 관대하게 적용합니다.
2. 율법을 대할 때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율법을 대할 때 ‘나는 하나님의 법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히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조차 ‘성령의 역사’입니다.
‘로마서 3장 9~31절’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고백이 그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려던 내가 율법 앞에서 깨닫는 것은 죄인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 뿐이었다.”입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십자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의로움을 완전히 이루신 예수님이 사도 바울 안에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은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그 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따르며 살아가게 하시는 것(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인간의 신념이 아니라, 매일 내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이며, 능력이 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3. 출애굽기 20장 이후, 레위기 등에 나오는 ‘율법’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좀 지겨울 수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크게 두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요즘 누가 이렇게 다 지키나?’라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둘째는 ‘나는 이렇게 못 하는데, 어쩌면 좋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십니까? 첫번째 보다는 두번째가 나을까요? 아니면 첫번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좀 더 세련된(?) 기독교인인가요? 극단적 보수 골통 기독교인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태도일까요? 안타깝게도 두가지 모두 뒤로는 ‘자기 의로움’에 빠진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도 말을 하지 않고, 왜 이리 둘러왔을까요? 9절을 잘 보십시오. “양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라는 기록을 잘 묵상해보십시오.
사실, 오늘날의 시각 혹은 재판과정에서 봤을 때, 성경에 기록된 재판의 증거와 증언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증인의 증언, 범인의 자백 등이 재판의 증거로 작용합니다.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절대적 요소는 ‘인간의 내면을 정확히 보시는 하나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4. 본문 9절의 “양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에서 ‘재판장’의 히브리어는 ‘Elohiym’입니다. 네,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재판관 앞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양편 모두 섭니다. 심지어 사람 재판관도 하나님 앞에 서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깊이 묵상해본 사람, 그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손톱 만큼이라도 깨달은 사람의 입에서 함부로 나올 수 없는 말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쩌고 저쩌고…코람 데오(Coram Deo) 어쩌고 저쩌고…”입니다. (가장 두려운 말이 너무 흔한 종교 구호가 된 것 같습니다…)
5. 그러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그의 영혼의 방향, 태도는 어떨까요? 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분의 십자가 붙들지 않고, 그 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벌벌 떨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설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로움의 착각’에 빠진 사람은 결국 ‘재판장 앞에 설 때도 자기의 옳음, 의로움’을 증명 받기 위해 섭니다.
그러나, 자기 의로움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붙든 사람은 그저 높이 들린 십자가 아래에 엎드립니다. 죄인인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인 예수님의 십자가 맨 밑에 자신의 전인격, 심령, 삶을 파묻어 버립니다.
오늘도 진정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엎드린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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