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19장 14~25절
1.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의 현현(顯現, Manifestation)’입니다. 16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임재를 ‘우레, 번개, 구름 등’의 웅장한 자연현상으로 드러내고 계십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강력한 군대의 총사령관(?)처럼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옳습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경험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언어와 그 언어로 인식되는 ‘영광, 강함, 위대함 등등’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기 위해 부득이(?) 사용하신 자연 혹은 초자연 현상에 주목하면 크게 두가지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그저 무서움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정한 어떤 규정과 규례를 따르지 않으면 가차없이 징벌을 가하는 위협적 대상(21~22절)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종교적 태도는 결국 종교 노예로 살게 합니다. 그렇게 뭔가 열심히 하고, 잘 하는 것 같으면 자기 의로움에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뭔가 잘 안 풀리고, 뭔가 잘 안 되면, 신적인 징벌 혹은 저주가 임한 것이 아닌가라는 비굴할 정도의 염려에 빠집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임재와 나타나심을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실제 16절을 ‘시내산’이 화산이었다는 주장을 하며 그 위치를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오즈 산’이라는 곳을 ‘시내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을 제가 일일이 반박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저 한가지만 성경의 근거로 말해본다면 18절입니다. ‘옹기 가마 연기’입니다.
용암이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화산을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옹기를 굽기 위한 가마를 연상해 보십시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을 태우고도 남는 뜨거운 불이 있으나, 가마(진흙)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 속에 불이 타오른다는 것은 피어 오르는 연기로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3. 이것이 하나님 임재의 본질입니다. 빽빽한 구름! 옹기 가마의 연기!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본질입니다.
바로, 가려주시는 은혜입니다. 덮어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현현(顯現, Manifestation) 마저도 가리고 덮어서 나타내십니다.
더 위대하고, 더 웅장하고, 더 화려하고, 더 무시무시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어찌, 빽빽한 구름, 우레와 번개 따위가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영광을 대변하는 수단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스스로 가리시고, 덮으셔서 범죄한 인간에게 나타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배려라는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빛의 수준이 아닙니다. 빛 그 자체이십니다. 그런 하나님, 빛이신 분, 생명이신 분을 스스로 떠난 범죄한 인간은 ‘어둠’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그냥 소멸됩니다. ‘빛’은 그냥 임했을 뿐인데, ‘어둠’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집니다.
이걸 깊이 묵상해보십시오. 과연, ‘빽빽한 구름’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범죄한 인간, 어둠 그 자체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 스스로를 감추시는 방법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빽빽한 구름’에 담겨 있습니다.
4. 예수님을 묵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정한 현현(顯現, Manifestation)이십니다. 그냥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성육신 마저도 ‘가려주시는 은혜, 인간의 육체 속에 자신을 숨기신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그 보혈로 우리를 덮으신 것만이 ‘죄인인 저, 어둠이 저를 가려주시는 은혜가 아니라, 성육신 마저도 범죄한 인간을 위해 스스로 인간의 육체로 가리고 덮으신 은혜이구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어둠 그 자체인 인간을 먼저 찾아오셔서 ‘나 여호와’를 항상 만나는 길과 방법을 열어 주신 것이 ‘시내산 언약, 그 속에 담긴 율법과 규례’라는 것을 깨닫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야 율법과 규례는 나를 옭매는 수단이 아니라, 그 분의 임재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 주시고, 가려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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