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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9월 23일 2020년 수요일 묵상

본문: 창세기 49장 13~28절

1.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계속 이어집니다. 1~12절은 ‘레아’를 통해 태어난 아들들이면서 연장자에 속하는 아들들에 관한 예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나머지 3명의 아내, ‘빌하, 실바, 라헬’을 통해 태어난 아들들에 관한 예언입니다. 사실, 어제 함께 나눈 묵상을 통해 ‘야곱의 예언’과 관련된 핵심적인 관점, 해석 등을 다 나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예언의 절대성’을 오해하여 ‘숙명,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특히, 예언 말한 사람을 신격화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의 예언에 대한 해석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유다지파, 요셉지파(므낫세, 에브라임)같이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경우는 덮어놓고 긍정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이후에 뭔가 부정적 것이 없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 13~21절에 등장하는 아들들은 별 볼일도 없고, 별 관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빌하, 실바’의 자녀들이라 더더욱 ‘정통 족보, 구속사의 족보’에서 배제시키려 합니다.


3. 하지만, 하나님에게 모든 지파는 동일합니다. 죄인인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우등한 줄 착각’하는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바라보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결국 인간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겸손한 척 할 뿐, 깊은 곳의 본심은 타인보다 내가 ‘우월한 존재’라고 믿고 있고, 믿고 싶어 합니다.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는 죄인의 회개’는 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선택 받은 특별한 나에게는 옛날 과거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왜 이런 묵상을 했을까요? “’스불론, 잇사갈, 단, 갓, 납달리’에 대한 예언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런 이런 결과로 이루어졌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이런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 때문입니다. 유다, 요셉 지파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간절합니다. 말씀을 붙들었다는 나름의 생각으로 자신의 삶과 인생을 투영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내게 임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스불론, 잇사갈, 갓, 아셀’을 읽을 때는 살짝 집중도가 떨어집니다. 제 3자의 관점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단 지파’는 좀 다릅니다. 계륵(鷄肋) 같은 존재입니다. 닭의 갈비처럼 ‘버리 자니 아깝습니다. 취하 자니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삼손’ 때문입니다. ‘단 지파’가 배출한 신앙의 영웅호걸, ‘삼손’ 때문입니다. (물론, ‘삼손’도 애매?하게 여깁니다.)

4. 이것이 ‘죄에 기울어진 인간의 마음’입니다. 요셉에게 펼쳐진 예언(22~26절), 유다에게 선포된 예언은 혼신을 다하여 내 쪽으로 끌어당기려 하지만, 나머지는 먼 산 쳐다보듯 합니다.

정말이지 이런 질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말을 들었던 ‘아들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예언인 듯, 유언같은… 축복인 듯, 저주 같은 애매한 아버지의 말을 들었던 ‘아들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내가 그들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라는 질문 말입니다.

그 말에 감정이 상하여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인생의 길을 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좋은 소리(예언)을 들은 아들 중에는 과대 해석하여 하지 말아야 할 행동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중심 요셉 지파와 그를 따른 나머지 지파들까지…)

반대로 감정이 상하고, 마음이 힘들지만, 아버지를 변화시킨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 분의 대속의 은혜를 붙들고 인생을 살아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프고, 찔리고, 껄끄럽고, 불편한 말씀이 들려올 때… 내 본성은 거절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십자가가 생각나고, 그 말씀 따라 내 심령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믿음이 생길 때가 ‘성령의 감동’이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을 도려내는 것이 ‘가장 귀하고, 기쁜 생명의 역사’가 되길 기도하십시오. 이것 만이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생명’ 얻는 유일한 방법임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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