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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9월 22일 2020년 화요일 묵상

본문: 창세기 49장 1~12절


1. 창세기 49장은 임종을 앞둔 야곱의 예언이자, 유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예언으로 인하여 ‘아들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언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49장의 예언은 ‘축복’도 있지만, ‘저주’에 가까운 것도 있습니다. 솔직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말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라는 대전제가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예언’을 대하는 시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예언’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을 결정론적 시각에서 잘 못 오해하면 ‘운명론, 숙명론’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식의 극단적 운명론에 빠집니다. 타종교 혹은 무속에서 말하는 타고난 숙명, 속된 표현으로 ‘팔자타령’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은 다릅니다. “대속의 은혜 가운데, 십자가 은혜 안에서, 돌이키며 회개하는 사람에게 회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든 사람에게 생명의 길이 반드시 허락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경이 말씀하는 예언입니다.

2. ‘르우벤’은 장남에 걸맞게 야곱의 ‘능력’, ‘기력의 시작(첫 자녀)’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인 성격의 단점과 그로 말미암은 실수를 말합니다. 바로, 아버지의 아내였던 ‘빌하’를 범했습니다.(창35:22)

‘물의 끓는 것’같이 한번 끓어오르면 겉잡을 수 없었던 ‘르우벤’은 그의 기질을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못함으로 너무 안타까운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그는 ‘명목상 장자’일뿐, ‘장자의 명분,자격 등’을 상실하게 됩니다. (역대상 5:1)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내용은 좀 심한 말로 거의 ‘저주’에 가깝습니다. 저주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7절) ‘세겜의 대학살 사건’의 꼬리표가 이토록 지독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실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 두 지파는 흩어짐을 당합니다. 레위 지파는 48성읍으로, 시므온 지파는 유다에 흡수됩니다.

‘유다’에 관한 예언은… 두 말할 것 없습니다. ‘참 좋습니다.’ 1~12절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 관련된 설교를 들은 사람은 누가 봐도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실 ‘메시야(구원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다윗 왕’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말씀으로 ‘통일왕국의 왕권’이 ‘베냐민 지파’에서 ‘유다 지파’로 넘어올 때 들이밀었을 것입니다. ‘남북이스라엘, 분열왕국 시대’에도 유일한 정통성을 주장할 때, 7절을 중심으로 한 7~12절 전체를 내밀었을 것입니다.

3. 사람의 원함, 소원, 희망, 바람 등을 이루고 얻기 위해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됩니다. 내가 하려는 어떤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예언 등을 끌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의 복음’은 온데 간데없어집니다. 그저 세상 살아가는 ‘지혜서, 지식서, 설명서’로 이해하고 적용하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얻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의 예언은 ‘어떤 이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언에 묶여서 종교노예로 살아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언은 ‘그런 삶을 버리고, 대속의 십자가 앞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가라!’입니다.

‘르우벤’에 야곱의 말(예언)은 아버지가 그의 삶을 보면서 “너 그대로 살면 큰 일 난다. 물을 끓음 같은 네 성격을 하나님께 드리며 다스림을 받아야 네가 산다.”가 녹아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너희 칼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차라리 너희는 ‘하나님께 완전히 녹아 드는 것’이 사는 길이다.” 네, 그렇게 ‘레위 지파’는 군말 없이 48 성읍으로 흩어졌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녹아 들었습니다.

제발, 땅 분배 못 받은 시므온 지파를 ‘별 볼일 없었다. 세겜 대학살 사건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근심이었다.’라는 식으로 비하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레위 지파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안 합니다. 네, 참 이상합니다.)

또한 ‘유다 (한 개인, 지파, 현재 유대인)’는 8~12절이 아무리 조상 야곱의 예언이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는 왕권에 대한 확증’이라도 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성경의 핵심인 ‘대속의 은혜’를 놓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왕권 강화, 유대인 민족 자긍심 고취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다 보면 이런 저런 기회에 ‘영적 능력’이 좀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자주 혹은 아주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혹시라도, ‘예언(?), 어떤 기도의 내용’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혹여 ‘나쁜(?), 찝찝한(?) 말을 들었다면, 그냥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십자가 앞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믿음으로 인생을 살면 됩니다. 반대로 ‘좋은, 긍정적인 예언(이런 단어 쓰고 싶지 않습니다만)’을 들었다면, 들뜨지 말고, 감사하며,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온 삶을 계속 살면 됩니다.

십자가에서 돌이킴이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의 가는 길이 ‘생명의 길’임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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