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18장 13~27절
1. 출애굽기 18장에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등장합니다. ‘미디안 제사장’이었던 그가 12절에서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은 나름의 제사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딱 그 수준’에서 봐 넘겨주신 것입니다.
이런 ‘이드로’의 제사 방법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드로’가 드린 제사도 긍휼로 봐 넘기십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십니다.
어쩌면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같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다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긍휼한 마음으로 우리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에는 아주 잘한다는 것이 부모의 눈에는 답답해 보여도 그저 미소 지으며 ‘아이고, 예쁘네. 잘하네.’라고 말해주는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 행위, 업적, 이루어 낸 것 등을 보며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영혼의 상태, 마음의 태도를 보십니다. 절대 숨길 수 없습니다!
내 영혼, 내 중심, 내 마음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신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어떠십니까? (저는 끔찍?합니다.)
‘내 마음을 보신다. 아신다. 살피신다.’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고, 찬양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가 의로운 줄 알아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괜찮은 줄 알아서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보기보다 남에게 시선이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을 향한 판단과 정죄, 손가락질이 너무 익숙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모세의 고충?’이 무엇이었을까요? 13절의 기록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를 찾아와 재판을 요구한 내용들이 무엇이었을까요?
모든 것이 ‘자아’와 연관된 것들입니다. ‘내가 맞냐? 네가 맞냐?’이 문제로 모세를 찾아와 판단을 요구한 것입니다.
특히, 15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언뜻 보면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께 물으러 왔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이 무엇일까요? 자기가 옳다는 것을 하나님께 증명 받으러 온 것입니다. 자신이 맞다는 것을 하나님의 권위(?)를 통해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3. 저는 이렇게 기도하려고 참 많이 노력합니다. “하나님, 제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제 생각 반대로 되는 것에 감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지금 떠오른 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제가 위에 기록한 몇 문장의 기도가 전부가 아닙니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제 안에 고민이 있습니다.
고민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저렇게까지 기도해야 하냐?!’라고 외치는 자아의 소리 때문입니다. 저렇게 기도하고 싶지 않는 것이 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제 원함대로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도 맨날 넘어지는 것이 접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제 못난 본성보다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능력, 성령의 인도하심이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4. 이런 마음으로 16절을 다시 보았습니다. 모세가 아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양쪽을 재판하여 알게 한 ‘하나님의 율레와 법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네 자아에 기울어진 너를 인정하고, 여호와께 두 사람 모두 엎드리십시오.’입니다.
결론을 지어준 것이 아니라, 이런 나를 인정하며 대속의 은혜(십자가 은혜)를 붙들고 여호와 앞에 엎드리는 것부터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21절)’같은 교회의 지도자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질은 중심에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그 십자가에 못 박힘을 매일, 매순간, 가장 먼저 행하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 또 가장 작은 교회인 가정의 지도자인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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