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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9월 13일 2022년 화요일 묵상

본문: 에베소서 5장 15~21절



1. 사도 바울은 4장 25절 이하에서 시작된 ‘옛 사람’의 모습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의 삶에 대해 계속 서술합니다.

십자가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은 달라집니다. 변화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이 지긋지긋해집니다. 새 사람으로 변화된 삶,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철저한 회개가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더 기도하며, 더 발버둥칩니다.

그렇게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해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지키기 싫기 때문입니다. 내 본성대로, 내게 죄성대로, 내게 끌리는 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말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새 사람을 입은 것도 내가 정해 놓은 부분에서만 새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죽은 뒤에 구원받기 위한 조건(?)으로 ‘새 사람을 입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여전히 이 땅에서의 삶은 내 맘대로 살고 싶습니다. 내 맘대로 살기 위한 것들을 주시는 초월적 존재로 예수님을 제한하고 싶을 뿐입니다.


2. 정말 진지하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미 살아갈 믿음과 능력을 주신 줄 믿고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의 기록처럼 저와 여러분은 ‘지혜있는 자’입니다. 지혜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분의 기록된 말씀, 성경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내 뜻과 내 생각의 옳음을 증명 받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내 속에 지혜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철저한 성령의 인도함 받기 위해 성경을 읽고, 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도 지키지 않는 말씀을 누가 지킵니까? 성경이 진리라고 말하면서 성경대로 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지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포함해서 우리가 말씀을 지키지 못한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적어도 부끄러운 줄은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인인 내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 숙인 것인데, 누군가 그걸 겸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그런 말(겸손하다는 말)을 들으면 더 부끄러워 속으로 눈물을 삼킬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바짝 엎드려 살면 눈곱만큼이라도 달라지고, 예수 닮은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령의 음성이 무엇인지 구분이 안 되십니까? 단순할 정도로 성경 말씀 그대로 살아보십시오. 힘들지만, 내 생각 반대로 행하십시오. 내 판단과 추측 반대로 선택하는 훈련을 해보십시오.


3. 십자가 복음대로 살기에도 시간은 촉박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기에도 남은 세월이 짧습니다.

무엇보다 악한 세상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악한 세상의 소리에 여전히 속아 넘어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보다 비진리에 관심이 많은 육체의 소욕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16절은 권면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급박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향한 외침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산다는 절박한 외침입니다.

‘세월’로 번역된 ‘kairos’는 모든 시간 개념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세월’이라는 한국어의 느낌이 주는 것보다 더 짧고 세밀한 시간을 포함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 개념 아래 있다는 것은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렇게 ‘아끼라’를 주목해보십시오. 이것은 단순히 ‘절약하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끼다’로 번역된 ‘exagorazo’의 뜻은 ‘구속(救贖, redeem)하다. 값을 주고 사다.’입니다.

네, 단 하나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속되어야 합니다. 십자가 은혜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4. 우리의 내면은 무엇으로 가득합니까? 16절의 명령처럼 무엇에 취하고, 무엇으로 충만하려 합니까?

술 취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본문으로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아야 하는지, 적당히 마시지만 취하지 않는 것이 맞는지를 따진다면 이미 말씀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고 싶은데, 말씀을 이용해서 적당히 죄책감을 덜고 싶은 본심이 작동한 것입니다.

술로 인하여 취한 상태를 경험했다면 입에 대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기울인 술잔 때문에 누군가 시험에 든다면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술 취함을 단순히 알코올의 문제에만 국한시키지 마십시오. 음식에 취하고, 돈에 취하고, 세상 즐거움과 안락함에 취하고, 권력과 명예에 취하고, 자기 의로움에 취하고, 종교성에 취한 것도 안 됩니다.

안 되는 이유는 ‘성령의 충만함’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가득하면 위에 나열한 것들 나를 취하게 하는 ‘시간의 지배 가운데, 시간의 흐름 가운데 썩어질 것들’이 채워질 틈이 없습니다.

우리, 성령의 충만함을 구합시다. 제발 부탁입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 나를 편하고, 즐겁게 하는 것들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가장 먼저 구하고, 채워져야 할 것! ‘성령 충만함’입니다. 이 충만함 때문에 덜 채워지고, 덜 즐기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내 안에 가득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그 영혼의 배부름 때문에 조금 부족한 것에 대한 결핍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저도 이것 때문에 십자가 앞에서 저를 쳐 복종시키는 기도를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합니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오늘을 살아낼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 그 풍성함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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