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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9월 10일 2020년 목요일 묵상

본문: 창세기 42장 18~38절

1. 오늘 본문의 시작은 정탐꾼으로 의심받아 투옥되었던 ‘야곱의 아들들’이 풀려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요셉이 그들을 투옥한 것은 복수심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대 애굽의 법에 따른 절차였습니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은 3일 동안 감옥에 감금되어 있었던 ‘요셉의 형제들’은 20여년 전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동생 요셉을 구덩이에 가두고, 팔아버린 패륜적 행동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의 모든 상황을 통해 ‘요셉의 형제들’이 스스로 죄악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감정으로 형들을 대하지 않고, 법에 따라 차근차근 상황을 전개 시켜 나감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총리라는 직책이 주는 권한을 휘두르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형들’에게 친히 일하시도록 합니다. 말 그대로 ‘선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2. 감옥에서 풀려나 ‘요셉의 형제들’이 처음 들은 말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18~20절에 기록된 ‘요셉의 말’에 소스라치듯 놀랐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형제 중 한 사람만 옥에 갇히게 하고… 막내 아우를 데리고 오라…”

3일 전까지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15, 16절)라고 말하던 ‘애굽의 총리(요셉)’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라고 말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행한 죄악(요셉을 팔아 넘김)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말을 합니다.

21~22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형제들’은 3일 동안 감옥에서 갇혀서 이미 20여년 전 요셉을 팔아 넘긴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 서로 언쟁 혹은 반성이 있었다는 것을 얼마든지 추론할 수 있습니다.

형들의 반성을 들은 요셉은 북받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잠시 자리를 떠나 통곡하고 돌아옵니다. (24절) 그리고, ‘시므온’을 볼모로 잡은 뒤 나머지 형들을 가나안으로 돌려보냅니다.

25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곡식’은 물론이고, 곡식을 사기 위해 가져온 돈까지 함께 돌려줍니다. 경우에 따라 이것을 ‘형들을 압박하기 위한 계획’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좀 억측입니다.

형제들은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아버지 ‘야곱’에게 모든 일을 이야기합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야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입니다. ‘베냐민’에 대한 집착은 20여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실 ‘요셉, 베냐민’에 대한 집착은 ‘야곱’ 자신에 대한 집착입니다.

3. 사실, 요셉의 이야기는 ‘총리가 된 요셉’에 국한하여 해석할 내용이 아닙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 전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어느 가정이나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수 있는 갈등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요셉’을 총리 만드신 하나님의 신적 능력에만 마음이 기울어지면 안 됩니다.

‘연약하고, 이기적이고, 헛점투성이인 야곱과 그의 가족’과 끝까지 함께하시며,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총리가 된 요셉’에게 계속 간섭하십니다. 총리의 권한과 힘, 재력, 능력을 가지고 자기의 감정, 생각, 뜻대로 일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만약, 요셉이 ‘애굽 총리의 권한과 힘’으로 ‘형제들’을 감정적으로 대했다면, 자기 생각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네, 하나님께서 ‘형제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일하시고, 깨닫게 하실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 됐을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에는 ‘야곱과 요셉을 포함한 아들들’의 심리 상태, 내면의 이야기 등을 상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 가족’의 깊은 갈등과 내면의 고민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요셉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의 삶 속에서 ‘사건’을 대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 모습에 사람의 마음은 움직입니다.

형들의 뉘우침과 고백의 한마디가 ‘요셉의 응어리’를 녹였습니다. (물론,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결과를 기대한 말이 아닙니다. 그저 솔직한 뉘우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에 합당한 행동이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늘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는 항상 내 앞에 있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는 길(18절)’, 십자가에서 돌이켜 사는 길을 걸으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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