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1~18절
1.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를 마무리 하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고(1~2절), 동시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3~5절)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 목회자,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는 필수입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회 공동체와 성도들의 기도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이 됩니다.
사역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 위에 구체적인 도움의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한 일하심이 드러납니다. 사람이 행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다시 한번 새겨야 합니다. 이런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위해 가장 많이,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고, 진정한 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사시는 것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기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1~24절을 참고하여 묵상해보십시오.)
이런 기도는 오직 십자가 복음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런 기도가 아닌 기도는 모든 종교에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기 위한 기도는 모든 종교인이 할 수 있지만, 내 뜻대로 되기보다 내 뜻대로 되지 않기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만 가능한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는 자신과 일행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신이 기도를 부탁했던 내용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기도합니다.)
3절의 “미쁘사”로 번역된 헬라어 ‘pistos’는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이 우리 기도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뭔가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는 인간의 추측 혹은 경험, 판단, 확신 따위에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될 것 같은데, 뭔가 애매할 때 기도합니다. 도저히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을 때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척만 할 뿐, ‘되겠나?’라는 의심의 닻을 심령에 내리고 기도합니다.
상황의 변화를 기대하며, 그 상황을 변화시킬 하나님의 어떤 능력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상황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드시 선한 길로, 구원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어떤 상황에도 나를 떠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 변하지 않는 성령의 은혜, 그 자체를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될까 안 될까…’라는 안절부절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라질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안절부절하는 나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길 기도해야 합니다.
3. 사도 바울의 인생을 돌아보면 상황이 바뀐 것보다 그 상황을 딛고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간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내려치는 채찍이 멈추고, 날아오는 돌이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체포하려는 그들에게 오롯이 체포됐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그토록 방문하려 했지만 가지 못했습니다. 끌려가 목이 잘리기까지 그의 환경과 상황은 그냥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상처투성이인 몸을 이끌고, 체포된 몸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 전해야 할 십자가 복음, 지금 가르쳐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전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손에 들린 성경,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만나게 됐습니다.
4. 저와 여러분이 살아내는 오늘 하루의 삶! 십자가 은혜에 붙들려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가치를 통해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 복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그 복음이 기록된 성경은 진리이며 진짜입니다. 결국 내가 가짜라는 것이 내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를 다시 돌아봅시다. 혹시 기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식사 때 쫓기듯 하는 기도 외에 나의 기도 생활이 거의 없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말씀이 나의 지식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는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했다면, 이미 행할 믿음 주신 줄 알고 예수 그리스도 닮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뉴저지주님의교회’와 저와 여러분의 가정, 삶의 현장이 ‘기도의 터전’이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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