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7절
1. 데살로니가후서 2장부터 편지의 본론이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재림)에 대해 다룹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있을 구체적인 사건들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가장 먼저 배교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이 등장한다고 말합니다.(3절) 여기서 배교는 단순히 신앙을 버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4절)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과 존재는 잠시 주춤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법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완전히 심판 당하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그 진리의 울타리 안에 있는 성도들은 거짓의 미혹을 이기고 구원함에 이르게 하십니다. (7~12절)
2.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 재림의 때에 있을 일을 매우 짧게 기록하였습니다. (3~11절) 그럼에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약 40년 뒤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마치 한방울의 기름을 짜내듯 요한계시록의 압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진정한 기록자는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을 통해 당신의 다시 오심(재림, 강림)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들릴 수 없습니다. 바뀔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오심으로 완성된 십자가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오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옆구리의 창 자국, 손의 못 자국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분명 그 분이 다시 오십니다. 또 우리가 천국에 가서 창 자국, 못 자국이 있는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각 사람의 마지막인 죽음, 즉 ‘개인적 종말’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우주적 종말’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날에도! 우리의 감격과 놀라움은 같아야 합니다.
천국의 화려함 혹은 재림의 날에 있을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무시무시한 일 혹은 영광스런 현상(?) 때문에 놀라고 감격하지 않습니다.
처음 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흔적을 보며 감격하고, 감사하여 그 분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3. 네, ‘도마(Thomas)’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4절 이하에 기록된 도마의 모습이 예수님 만난 날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봅니다. 예수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그 선명한 십자가의 흔적을 보면서 ‘나의 생명, 나의 전부, 나의 사랑, 나의 예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참 많은 이단과 그 교주들이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보여주어야 합니다.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나 대신 못 박혀 죽은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시간공간을 초월하는 ‘전우주적 재림’이 아닌, 장소와 시간에 갇힌 ‘국지적 재림’입니다. 그냥 다 거짓이고, 속임수, 종교 사기극입니다.
4. 감사한 일입니다. 십자가 진리 안에 붙들려 있는 것, 거기에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분을 다시 만날 믿음, 그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처럼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13~17절의 고백도 십자가 진리 안에 붙들린, 붙들리게 하신, 붙들릴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감사, 찬양, 위로, 소망입니다.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나를 위해 손과 옆구리에 그 선명한 흔적이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영광의 날을 바라봅시다.
그렇게 오늘의 모든 거치는 것들, 땅의 아픈 것들, 세상의 모든 쓰라린 것들을 딛고 일어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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