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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8월 25일 2022년 목요일 묵상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7~3장 13절


1.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계속 이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아끼는 제자이자,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보내게 된 과정과 이유 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7절을 통해 ‘데살로니가’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아덴(아테네)’와 ‘고린도’까지 내려간 바울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향한 핍박이 떠난 원인이었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을 떠나온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600 km라는 길을 걸었지만, 다시 데살로니가를 방문할 기회를 찾았습니다.

본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서로에게 떠남과 이별이 얼마나 큰 아쉬움과 고통이었는지 바울의 표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 재림을 향한 예수님의 갈망이 우리보다 더 큽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으시고(요한복음 14장), 성령을 보내신 예수님의 간절함과 아버지 하나님의 때에 온 우주의 왕, 신랑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간절함이 재림을 향한 우리의 간절함보다 더 큽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막연한(?) 두려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때 일어날 무시무시한 일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건에 집중하다가 정작 중요한 ‘어린 양의 혼인잔치(요한계시록 19장)’과 진정한 ‘하나님의 장막’, 우리의 참 거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요한계시록 21장)를 놓치게 됩니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하다가 위협하고, 협박하고, 속이는 이단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2. 사도 바울의 편지를 들고 온 ‘디모데’를 만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디모데와 함께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는, 아니 낭독하는 것을 들으며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19절) 이후부터 ‘강림(재림)’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이 됐겠습니까?!

‘사탄의 방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시하고, 우습게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탄의 방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간절함과 의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방해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보 멍청이(순화한 표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악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과 의지! 무엇보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간절함을 믿고, 십자가 능력을 의지하여 침착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정죄나 미움을 걷어내야 합니다. 나도 깜빡하면 불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을 결박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전진해야 합니다.


3. ‘사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방해’에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가는 것 대신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디모데’에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다’라며 그냥 손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썼습니다. 2,000년 전에 편지 쓰는 것은 오늘날 책 한권 집필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양피지 혹은 파피루스 종이에 조악한 필기도구로 편지를 쓰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수고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확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기록했다.”라는 ‘종교 사명’에 기울어진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르고 썼습니다. 기록할 당시에는 자신이 쓰는 편지가 성경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냥 썼습니다. 힘들어하고 지친 성도들을 향한 지금 당장의 필요, 지금 당장의 간절함, 지금 당장의 사랑으로 기록한 것뿐입니다. (어떤 성경의 저자가 ‘성경을 많이 기록했다’라는 식의 칭송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4.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수많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습니다. 사탄의 방해도 있고, 나의 실수와 잘못 때문에 찾아오는 환란이 있습니다.

그럴 때 침착해야 합니다. 어렵지만,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을 만날 때, 그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십자가 앞에서 큰 숨 내 쉬어야 합니다.

“예수님,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대하는 저를 보게 하옵소서. 이 일 앞에 우왕좌왕하는 나! 흥분하여 어쩔 줄 모르는 나부터 십자가에 붙들리게 하옵소서. 영적인 눈,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분별해야 합니다. 나의 어리석음, 잘못, 실수, 욕심 때문인지, 정말 사탄의 방해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한 걸음 걸어 나갑시다. 십자가 은혜를 향하여 한 걸음 걸어 나갑시다. 그러면 아름다운 결과, 진정한 선한 열매를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로마서 8장 28~30절)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온갖 방해에도 마침내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이 믿음과 이 믿음에 합당한 우리의 삶의 발걸음이 날마다 더 새로워지고, 힘있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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