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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8월 24일 2020년 월요일 묵상

본문: 이사야 33장 1~24절


1. 오늘 본문, ‘이사야 33장’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에 대한 메시지는 계속 반복됩니다.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중요성과 확실성에 대한 강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포악으로 대변되는 앗수르를 진멸하시고,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의 속임수에서 건져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앗수르의 군대’가 강력해 보이고,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곳에 거하며 모든 것을 장악한 ‘정치, 종교 권력’이 통치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사’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진정으로 ‘높은 곳에 거하며 다스리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32장 1절을 통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신 것처럼 ‘왕 중의 왕,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시는 유일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경외하는 것이 보배임을 분명히 합니다. (6절)


2. 가끔 오늘 본문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자주 그렇습니다.) 특히 15~16절을 출세(?) 지향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5절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16절을 이뤄 주신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 거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스스로 자존하시며, 가장 높은 곳에 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뿐입니다.

또한 하나님 외에 높아짐을 택하면 안 됩니다. 사탄의 타락은 스스로 높아지려 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인간이 사탄에게 속은 이유도 마지막, 그 선악과만 범하면 자존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10절의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선언은 말 그대로 하나님만이 선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일어나 스스로 높이신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을 통해 부활, 승천, 우편 재위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만이 15절에 기록된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16절의 결과! ‘구원의 반석, 생명의 양식, 영원한 생명수’가 되셨습니다.


3. 혹시 우리 안에 반복되는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까? 네, 그럴 리 없다고 믿습니다. 여전히 예수님만 생각하면 뭉클함이 있을 줄 믿습니다.

오늘날은 정말이지 이런 영적 순수함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닳고 닳아 반질거리는 차돌 같은 심령이 아니라, 좀 투박한 듯 폭신한 배합토(top soil)같은 심령으로 복음을 대해야 합니다.

2~6절로 이어지는 말씀, 그 말씀을 기록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중략)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개인적인 고백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내며, 오늘 함께 나눈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를 틀어 놓고 엎드렸던 저를 기억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만을 간구하던… 눈물 흘리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다시 그때의 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가장 어려운 시기, 가장 순전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간구했던 이사야!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시온’을 경험한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이 스며들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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