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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8월 23일 2022년 화요일 묵상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장 1~10절


1. 오늘부터 ‘데살로니가전서’를 묵상합니다. 혼동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는 성도들에게 귀한 위로와 능력의 말씀이 됩니다.

‘데살로니가’에 관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BC 316년 마케도니아 왕 카산드로스가 자신의 아내인 ‘테살로니가’의 이름을 붙여 건설한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로마 제국의 퇴역 군인들이 많이 살았고, 로마 제국의 주요 교통망인 ‘에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가 관통하는 이곳에는 로마 제국의 퇴역 군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니아 지역의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다양한 신전(神殿, temple)과 황제숭배로 가득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세워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은 ‘마게도냐 지방(유럽 대륙)’의 두번째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6~17장’을 함께 읽으며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진 배경과 전후 사건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아로 가려던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유럽대륙으로 건너갔고, ‘빌립보 교회’에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세 번의 안식일 동안 유대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폭동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 일행은 약 600 km 남쪽에 있는 ‘고린도’로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고린도’에 머무르던 ‘바울’은 신생 교회였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기록하여 보낸 것입니다.


2. 오늘 읽으신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서론입니다. 1~4절은 문안 인사(바울 서신의 특징)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5~10절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영접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감격과 칭찬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그의 마음이 더 다가올 것입니다. 아니,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은 교회를 향한 목회자들, 교회를 향한 신실한 성도들, 여전히 영원토록 교회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6절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환란, 고난, 어려움’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머물러 주저앉느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견뎠습니다. 사도 바울 없이 견뎠습니다. 사람이 그들을 이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들을 붙들어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려움’이라는 상황이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흔들리고, 불안한 상태’를 통해 내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찬송의 가사처럼 ‘어려운 일 당할 때…’, 내가 무엇을 찾고, 내가 무엇을 의지하며, 붙드는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3.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당한 어려움은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관념이 아니라, 실제였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 그들이 바라고, 원하고,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9~10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일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어려움이건 그것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건 그 닥친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때 내가 어떤 믿음의 반응을 보이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십자가 붙들고 일어나는 삶이어야 합니다. 눈에 닥친 좋은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금만 힘들면 의기소침하고, 조금만 잘되면 의기양양한 얕은 영혼의 반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 앞에서 가장 먼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떠오르는 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록처럼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님”이 떠오르는 것은 말 그대로 은혜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장 어려운 일 앞에서 견딜 힘이 생기셨습니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장 좋은 일 앞에서 진정한 감사와 겸손의 태도를 가지셨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처음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받드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 다시 만날 간절한 소망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능력과 기쁨이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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