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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8월 18일 2022년 목요일 묵상

본문: 레위기 26장 14~26절


1.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명령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꺼리지만, 신학적 용어(?)로 ‘언약적 저주’라 말합니다.

이 내용은 39절까지 이어지면서 징벌의 강도는 점점 더해집니다. 14~17절은 각종 질병에 시달림, 추수하지 못함, 적의 침략. 18~20절은 가뭄과 땅의 황폐함. 21~22절은 들짐승에 의한 피해. 23~26절은 전염병, 전쟁, 굶주림이 언약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로 다가올 것이라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언약적 저주’와 그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합니다. 크게 두가지로 나뉠 것입니다.

첫째는 그런 저주와 재앙이 있어도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자기가 쌓아 둔 것들로 적당히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경제, 과학, 의료, 기술 등의 체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것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생각인지 믿음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두번째 생각은 두려움에 근거한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재앙의 근원, 저주의 시작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저주를 쏟아부으신다. 하나님이 재앙으로 치신다.’라는 두려움과 공포가 사람들의 내면을 지배합니다.

이런 식의 생각이 ‘무속적 신앙관’입니다. 이런 것은 십자가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녹아 내린 사람의 반응이 아닙니다. 순종이 아닙니다. 굴종이고, 복종입니다.


2. 어제도 말씀 드렸습니다. ‘언약적 축복’ 또는 ‘언약적 저주’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인간이 생각하는 단어와 용어의 그림에 갇히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끄시는 구원과 생명의 길은 인간의 언어로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과 말로 표현하고, 기록하고, 담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과 인도하심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를 놓고 낚시질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말 잘 들으면 당근, 말 안 들으면 채찍이며 우리를 조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근을 얻고, 채찍을 피하기 위해 신앙 생활하는 것을 틀렸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본인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딱 어린아이 신앙입니다. 긍정적 의미의 어린아이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어린아이 신앙입니다. 순수함이 동기가 된 신앙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신앙입니다.


3. 축복과 저주…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원래 상태’를 깨달아야 합니다. 범죄 타락한 이후의 인간이 처한 상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존재가 인간이 아닙니다. 가만히 놔둬도 적당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 아닙니다. 내버려 두면 나름 멀쩡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저와 여러분이 아닙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인 삶을 무시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난 윤리와 도덕의 열매는 성경이 말씀하는 속사람의 상태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사는 존재로 바뀐 절대적인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영원한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강물에 내던져진 상태입니다. 맨몸으로 그냥 둥둥 떠내려가건, 유람선을 타고 호화 생활과 도덕, 종교, 문화 생활을 하면서 떠내려가건 그 마지막은 똑같습니다.

4.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저것들이 감히…!”가 아닙니다.

“제발, 돌아와라. 제발, 내 품으로 돌아와라. 그 길에서 떠나 나와 함께 다시 걸어가자.”라는 안타까운 마음, 찢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번역의 한계를 벗어나면 보입니다. 21절에 “너희가 나를 거슬러…”라는 표현을 보면 ‘감히!!!’라는 수식어가 뜰어가면 딱 좋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거슬러”로 번역한 것을 히브리어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너희가 나와 마주쳐 걷는다면’이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KJV, ESV는 “if you walk contrary to me”라고 번역했습니다.)

무엇보다 11~13절과 연결한다면 21절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를 떠나 죽음과 멸망의 길로 가는 너희! 죄의 멍에를 매고 죄와 사망의 종으로 살아가는 너희! 그 모든 멍에를 부수고 당당하게 자유인으로 서서 걷게 하였다. 그런데, 너희와 함께 걷기 위해 너희 가운데 성막으로 임재한 나 여호와와 반대로 걸어가면 안 된다. 다시 멸망, 죽음, 저주, 재앙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말아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분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것 외에는 생명의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한 길 십자가 은혜의 길을 따라가는 것 외에 우리에게 다른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내 본성 반대로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 되고, 진정한 감사가 되길 더욱 기도합시다!

우리의 남은 일생이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더 가까이 가는 복된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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