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28장 14~29절
1. 주일부터 살펴보신 ‘이사야 28장’에서는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끝나고, 다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대한 메시지가 기록됩니다.
특히, 이사야 28~39장에 기록된 말씀들은 대부분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선포된 예언입니다. 28장 1절의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라는 기록 때문에 자칫, ‘북이스라엘’에 대한 것으로 국한시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은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합니다.
‘남유다’가 ‘북이스라엘’보다 약 130년 정도 늦게 멸망한 것이 ‘남유다’가 그나마 잘 했기 때문에, 덜(?)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 남유다’가 더 심각한 것입니다.
2. 특히, 오늘 본문 14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즉, 남유다의 모든 종교, 정치 지도자들을 향한 강한 메시지가 시작됩니다.
15절에 그들이 말한 충격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사망, 스올과 언약했다’고 말합니다. ‘재앙이 올지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거짓을 피난처로 삼고, 허위 아래 숨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에 심취한, 반복된 종교 생활로 인하여 영혼에 굳은 살이 박힌 자들이 떠벌리는 소리입니다.
이런 현상은 특정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 생활을 한다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위험합니다.
14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것이 좀 의아하지 않으십니까?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잘 믿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들처럼 성경에 박식한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들처럼 열심히 유대교 종교생활한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제발 좀 내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반복되는 종교생활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기도 모르게, 싹튼 ‘영적 교만’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자신의 모든 ‘종교적 지식, 행위, 노력 등’이 오히려 ‘십자가의 생명과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사망과 언약’을 맺는 줄도 모르게 됩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오만한 자’ 조차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16절에 “견고한 기촛돌”을 다시 세우실 것을 말씀합니다.
‘기초, 기촛돌’은 가까운 미래로 말한다면 ‘다시 회복될 성전과 시온(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더 먼 미래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이심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온전한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각 사람이 ‘성전’으로 세워지는 것까지 이어집니다.
네, 인간은 ‘예수님의 십자가’마저 ‘종교행위’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런,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심, 성실하심으로 마침내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성취되었고, 재림의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인간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기초한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농사에 비유한 것이 23~28절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여건 속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견고한 기촛돌’을 삼으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29절의 고백, 믿음으로 드리는 이 찬양이 ‘삶의 능력과 열매’로 나타나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