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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7월 7일 2022년 목요일 묵상

본문: 히브리서 5장 11~6장 8절


1. 어제 함께 나눈 내용을 좀 생각하면서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이라는 것이 사람이 맡은 종교 직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십시오.

대제사장은 ‘죽음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대속죄일에 제물의 피를 들고 하나님 앞(지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죽음’입니다. 그렇게 다시 지성소를 나온 대제사장은 ‘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대제사장은 유대교에서 가장 높은 종교 직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담긴 진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히브리서가 기록될 때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특히, 유대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하신 대속의 제사, 대제사장의 역할을 믿지 못하는 유대 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외침입니다. 십자가의 생명과 복음을 종교, 무속, 기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호소입니다.


2. 죄인인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무감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히브리서의 기록 시기로 본다면 유대인 개종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자의 생각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아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그리스도)되심을 인정하지만, ‘대제사장의 완성’이라는 것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조상 중의 조상이라 생각하는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창세기 14장 18절)’을 언급한 것입니다.

3. ‘멜기세덱’을 살펴볼 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11절입니다. 11절은 ‘성경적 지식이 모자라는 어떤 사람’을 낮게 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11절 이하에 나오는 비유적 표현, ‘단단한 음식, 장성한 자, 어린 아이, 젖… 등’은 단순하게 성경 지식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12절의 “젖이나…”라는 표현을 한국적인 정서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이나’라는 표현은 원어에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누가 ‘멜기세덱’인가?”가 아니라, “왜, ‘멜기세덱’을 언급하는가?”가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4. 히브리서의 기록자가 ‘멜기세덱’을 기록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유대인들의 잘못된 ‘혈통주의’, 오직 레위 지파만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고집스런 ‘혈통주의’를 깨뜨리기 위해서 입니다.

즉… “좋다. 메시아(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예수님의 혈통)를 통해 온 것까지는 인정하겠다. 그런데, 어떻게 유다 지파인 예수가 오직 레위 지파만이 감당할 수 있는 대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느냐?!!! 그건 못 믿겠다.”라는 사람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을 기억하느냐? 아브라함은 그에게 경배하였던 것을 잊었느냐? 그는 ‘레위지파’가 아니었다. 아니, 그때는 ‘레위지파 ‘조차도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영원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선포하는 것이 ‘히브리서 5장 5~11절입니다.


5. 따라서 6장 1~2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다고 말은 했지만, 그분의 대제사장 되심에 대해서는 믿지 않고 부인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름의 종교 이해와 교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또한 4~6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은 사람, 선물로 주신 은혜로 믿은 사람, 그렇게 ‘나는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사는 사람들’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6절의 “타락한 자”는 단순하게 ‘도덕, 윤리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자”는 ‘회개하지 않는 자’입니다.

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 ‘타락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어제의 회개로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받은 ‘십자가 앞에 회개하며 돌이키는 은혜’로 내일을 살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매일 매순간 회개하며 돌이키는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은혜로 예수 닮은, 예수 닮을 수밖에 없는 삶의 열매를 맛보십시오. 오늘도 변함없이 십자가 앞에서 죽은 나, 그러나 예수께서 나 대신 사시는 삶을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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