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야고보서 3장 13~18절
1. 야고보서 말씀을 읽으면서 신앙 양심에 아무 찔림이 없다면 이상한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말씀대로 잘 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생각과 말로만 ‘자기 반성’을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인간은 상상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교묘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익에 따라 잠깐 겸손한 척할 수 있는 기막힌 자기 방어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에겐 지긋지긋한 본성이 있습니다. 괜찮아진 듯한데 자극 당하면 터져버리는 못된 습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말은 위로가 아닙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여전히 터뜨리는 사람도 있고, 십자가에 붙들어 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보았습니다. 특히 ‘혀’에 대한 말씀 6절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 온 몸과 영혼을 불살라 버리고도 남는 말…
3. 성령 하나님께서는 야고보 사도를 통해 간절함으로 권면하고 계십니다. 안타까움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으로 말을 쏟아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이익에 따라 말을 왜곡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생각과 말을 보시고 들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을 할 때 ‘하나님이 내 말과 생각을 보고 계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전혀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사람은 ‘하나님이 나의 말과 생각을 보고 계시지, 그래서 난 주님의 뜻에 따라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의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사람이 믿는다는 하나님은 자기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전인격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모조품 하나님’입니다.
4. 말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타락한 본성 때문에 말에 실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으려는 위장 전술에 불과 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도망치지 말자, 아빠도 너희도. 그 잘못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에 대한 결과는 서로 책임져야 한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함께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려 결단합니다.
저와 여러분, 감정에 머문 후회가 아니라, 십자가 붙들고 살을 도려내는 의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뼈를 끊어내는 돌이킴이 있어야 합니다.
5. 오늘 본문을 다시 깊이 묵상해보십시오. 반복해서 적어도 3장 전체를 마음으로 읽어보십시오. ‘말, 언변, 언어 등의 똑똑함, 논리 정연함, 지혜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보고서 3장의 결론은 17~18절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지식을 힘입어 내가 똑똑해지는 것, 말 잘하는 것 등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말과 삶은 결국 드러납니다. 어떤 형태로든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납니다. 드러난 결과, 나의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은 결과는 내가 책임 져야 합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을 모두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저와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제 가슴을 칩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이런 저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흘러 넘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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