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50장 4절~51장 8절
1. 제 개인적으로 오늘 말씀을 과하게 적용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일까요? 4절입니다. 어떻게 적용했을까요? 목회자, 그 중에서도 설교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간절한 기도에 이 말씀을 떠올리며(일명: ‘말씀 붙들고 기도’)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시는 목사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목회자에게 어떤 측면에서 다소 약점이 될 수 있는 ‘찬양의 달란트’라는 부분을 보완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설교에 은혜를 주셔서 영적으로 지치고, 힘든 영혼들(곤고한 자들)을 깨우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 가치관 등으로 해석하지 않으려는 발버둥 가운데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2. 오늘 본문을 잘못 이해하면 크게 두가지 착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4~5절을 ‘설교 혹은 말씀 전파 사명의 근거(?)’ 구절로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지나치면 ‘학위’ 혹은 ‘교육, 배움’ 자체에 대한 사람의 욕심을 포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6~9절을 ‘하나님의 신원(갚아주심, 복수?)’ 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의 교묘한 심리가 작용합니다.
6절을 가지고는 ‘내가 겸손히(?) 참는다.’, 7절을 가지고는 ‘억울하게(?) 당하는 이 수치를 견뎌야 한다.’, 8~9절을 가지고는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 나를 대적할 자가 없다. 결국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 Draw water to his own mill…)’식 해석에 빠지게 됩니다.
3. 물론,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라는 한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말씀드린 것처럼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읽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고난 당하실 때! 이 말씀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 같은 그 순간, 십자가의 죽음! 바로 그때에도 이 말씀을 기억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그 자체이신 예수님이 붙든 성경 말씀! 그 말씀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은 말씀을 우리 심령에 비춰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의로움과 착각에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말씀을 나의 신념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나의 원함과 욕심을 이루는 주술책으로 적용하지 않습니다.
4. 어쩌면 오늘 본문은 이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영적 시각이 확 열릴 것입니다. 4절의 “학자들의 혀”입니다. (괜히 서론이 길었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번역의 실수(?)가 아닐까?’라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봅니다. “학자들”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limmud’는 ‘가르침을 받은, 훈육 된, 배운…’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즉, “배운 혀, 훈육 된 혀, 가르침을 받은 혀”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어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느낌이 많이 다르실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웠다는 말입니까? 무엇을 ‘주 여호와’로부터 배운 것입니까? 무엇이 ‘곤고한 자, 영혼이 지친 자(더 정확히는 ‘영혼이 죽은 자’)에게 도움이 됩니까? 그들을 회복시키고, 살릴 수 있습니까?
네, 오직 하나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신 대속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의 제물 되신 십자가 은혜’, 그 하나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르침, 배움’은 ‘종교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닙니다.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아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아는 영혼의 태도와 그 영혼의 태도가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진정한 ‘학자의 삶, 십자가 은혜를 배운 자의 삶’입니다.
5. 오늘 본문을 기록하는 ‘이사야 선지자’는 ‘신비적 능력’이 임한 사람이 아닙니다. ‘특별한 택함’으로 쓰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먼저, 회개한 사람입니다. 모두가 여호와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져버린 그 시대에 먼저 엎드려 ‘대속의 은혜’를 구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이사야 6장’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부름을 받는 장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의 태도(이사야 6장 5절)! 이사야의 입술에 숯불이 닿은 사건(이사야 6장 6~7절)! 등등…(꼭 읽어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아는 ‘학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똑똑 해져서 아주 긴 선지서를 기록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가르침을 받고, 깨닫고, 배운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대속의 은혜! 그 은혜 앞에 엎드려야 산다!’라는 영혼의 지식과 태도였습니다.
‘이사야 51장 1~3절’은 이런 영혼의 자세를 가진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 아름다운 선포, 외침, 부르심이 능력으로 울려 퍼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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