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11장 23~31절
1. 믿음! ‘보이지 않는 하나님, 오실 메시야(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붙잡고 인내와 소망으로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찬 이 땅’을 살아간 구약의 인물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창세기 이후 출애굽과 이후 가나안 정착의 상황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기록합니다.
23~29절은 출애굽의 중심에 있는 모세의 믿음, 그와 함께 홍해를 건너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30~31절은 가나안의 첫 관문이었던 ‘여리고’의 점령과 그 중심에 있었던 ‘라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조금 주제에서 벗어난 듯한 이야기이지만, 31절의 “기생 라합”이라는 표현을 보면 성경이 얼마나 솔직한 책인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 책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자가 비록 사람이지만, 그를 붙들고 기록하신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인격으로 기록했다면 ‘기생’이라는 표현을 얼마든지 생략할 수 있습니다. 생략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함으로 ‘사람의 어떠함’과 아무 상관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죄인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2. 이제 ‘히브리서’가 ‘모세’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3~29절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십시오. 이런 선입견(?)을 내려놓고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생각을 좀 접어 두십시오.
히브리서는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 지도자’라는 말로 포장하는 ‘높은 사람, 리더, 지도자, 쓰임 받는 사람 등’의 이미지를 조금도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저, ‘믿음’ 없으면 안 되는 사람! 하나님이 주신 믿음, 위로부터 임하는 믿음 없으면 ‘죄악된 본성, 그 본성으로 누리는 즐거움’에 취해 살아갈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24~25절이 이런 모세의 본 모습을 반대로 말한 것입니다. ‘모세의 본성은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임했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믿음이 임했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그 길, 시내산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성막(하나님의 임재)’을 붙잡기 위해 떠났습니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3.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막’은 종교 행사를 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막’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따라서 ‘성막’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서 ‘그리스도’로 연결됩니다. 구약 시대에 관한 인물과 이야기를 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록자가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믿음으로 바라본 것은 ‘오실 메시야(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들(구약의 인물들)이 드린 모든 제사는 어떤 종교에서 행하는 종교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종교 행위와 방식이 아니라, 그 제사를 통해 죄인인 내가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본질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구약의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오실 메시야(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를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제사,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신 제사를 통해 구원받는다는 믿음 위에 마침내 십자가에서 완성될 구원! 그 구원을 이루실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4.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히브리서를 읽고,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 차례입니다. ‘오신 메시야,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우리는 그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 보다 더 확실한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았습니다. 아니, 우리는 구약의 인물들보다 상황(?)이 낫습니다.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2,000년 전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경험하고 누렸던 ‘보이는 것들의 힘, 능력, 안락함, 휘황찬란함 등’을 생각해보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지금 경험하는 것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떠났습니다. 그 자리를, 그 곳을, 그 좋은 것들을 뒤로 했습니다.
이 말씀 앞에 저를 세워 봅니다. 이런 말씀을 얼마만에 진지하게 묵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젠 이런 말씀을 선포하고, 설교하는 교회와 목회자를 찾아보기 참 힘든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그저 말씀을 묵묵히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한계와 죄성을 가진 사람이 정한 성경 본문이 아니라, 그저 시작하면 끝까지 성경을 따라가는 것이 다행입니다.
의지적으로 이런 말씀을 품게 하시는 것이 진짜 은혜입니다. 내 죄악된 본성이 좋아하는 말씀을 찾아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죄악된 본성이 싫어하는 본문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 진짜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들에 쓰러지고, 낙심할 때! 반대로 보이는 것들에 취해 헤맬 때!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통해 영혼이 번쩍 깨어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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