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Hyung Yun

7월 21일 2021년 수요일 묵상

본문: 이사야 45장 8~17절


1. 오늘 본문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선포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토기장이와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9~10절)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과 관련한 이야기(16~17절)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선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분석(?) 등을 접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당연한 듯 여겨집니다. 마치, 익숙함 때문에 새로움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내용,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묵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십자가 새생명의 은혜’로 살아간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새로움 이상의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딛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그 문제 앞에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2. 이사야 시대는 절벽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처참하게 멸망했습니다. 앗수르의 강력함과 잔인함 앞에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뭘 하시나?’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럴 바엔 왜 애굽에서 우리를 불러내셨나? 왜 우리는 ‘여호와’의 인도함을 따라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을 당하나?’라는 후회와 한탄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멸망길을 걸어간 것에 대한 반성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조차 자신들의 시간표와 계획에 맞추어 이루어지길 원했습니다. (예레미야서에 잘 드러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입니다.


3.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창조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 심판, 구원, 다스림 등등 모든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영역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을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내 손에 쥐고 휘두르려 합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마음에 묵상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야 40장 이후의 지루할 정도의 구원의 메시지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닐까? 오늘 나도,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네,네 알겠으니까…절대주권 등등 잘 알았으니까…빨리 말씀해주세요.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의 구원의 역사 있을지 말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은 것은 아닐까?”라는 소스라치는 듯한 제 심령의 한 구석을 보았습니다.


4.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의 삶을 보며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예수를 저렇게 잘 믿는다면서… 뭐 잘 풀리는 게 있나?”라는 식의 딱 자기 수준의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계셔야 합니다. (17절) 그런 자들이 또는 그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내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몰라야 합니다. 추측하지 못해야 합니다. 상상하지도 못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감춰져 있습니다. 골탕 먹이기 위한 감춤이 아닙니다.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주의 끝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흑암보다 더 깊은 우리의 죄악을 품고 당신 스스로 죽으시기 위한 사랑을 품고 계시기 때문에 ‘스스로 숨어 계신다’라고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스스로 숨어 계신다’라는 표현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견해가 있습니다.)

5. 하나님은 신적인 강력함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기보다 십자가 뒤에 스스로를 감추시는 것을 택하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생각하는 대단함, 강력함, 힘이 넘침 등으로 하나님이라는 신(神, God)을 찾지 못하도록, 십자가 뒤에 자신을 숨기셨습니다.

나의 죽음을 대신 품고 스스로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 그 대속의 은혜에 내가 깊이 감춰지지 않으면, 십자가 뒤에 숨어 계신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네, 저는 이래서 예수님이 좋습니다. 저의 타락한 본성으로는 도무지 다가갈 수도,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이 좋습니다. 인간의 어떠함으로는 걸어갈 수 없는 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이 좋습니다.

오늘도 이 좋으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11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