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11장 13~22절
1.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히 붙들고 믿음과 인내로 이 땅의 삶을 살아간 구약의 인물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13~16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끝까지 ‘믿음의 삶’을 산 아브라함의 인생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체의 죽음을 맞이한 가나안 땅에서 그는 이방인(갈대아 우르 출신)이었습니다. 땅(보이는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땅의 고향(본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13~15절).
아브라함이 땅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더 나은 본향,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 주어진 믿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만 볼 수 있고, 붙들 수 있는 ‘하늘 본향, 하나님의 품, 예수 그리스도(오실 메시야)’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17~19절에서 ‘아브라함’이 품었던 ‘믿음’의 정점을 기록합니다(창세기 22장). 이것은 ‘아들까지 바치는 순종’이 아닙니다. 그렇게 순종하면 더 큰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부활)을 통해 그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본 것입니다.
20~21절은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에브라임과 므낫세)을 축복한 것, 요셉이 자신의 뼈를 가지고 가나안으로 갈 것을 명령한 것’은 하나님이 선한 계획, 하나님의 아름다운 의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믿음’으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2. 물론, 나열된 모든 인물은 죄인입니다. 부족하다 못해 인격적인 모자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 오래 참으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게 된, 아니 동참했다고 여김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붙들린 사람들입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내 모습에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내 자신이 보이고, 이런 내 자신에게 절망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소망을 붙들게 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 대신 예수님이 사시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것 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처절하리만큼 깨닫고, 인정하게 됩니다.
땅을 딛고, 땅의 것을 먹으며 살아가는 육체의 소망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 더 나은 본향,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남은 인생은 ‘예수님을 향한 간절함, 사랑, 소망’이 이끌어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땅, 육체, 보이는 것이 잠깐 우리를 낙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분 좋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것일 뿐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것들로 주춤했던 내 영혼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고정시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영혼의 미소를 띄웁니다.
3. 아브라함을 생각해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대로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삶의 여정, 극적이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극적인 인생의 끝에서 나를 위해 ‘영원한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 그 분과 함께 영원히 거할 그 나라를 사모했던 아브라함을 묵상해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아들 바치는 순종을 했더니 ‘모래알 같이 많은 자손’을 얻었다는 식의 땅만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범죄한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들은 이 땅에서도 참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그런 착각에 빠졌을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이끌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고, 마침내 땅의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더 나은 본향’을 향해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보이는 것들이 나를 공격하고, 속일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이 우리의 참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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