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11장 1~12절
1. 이제 히브리서의 마지막을 향합니다. 주말에 읽으신 1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완성을 확증하는 내용입니다. 동시에 유대교를 믿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들에게 더 이상 동물제사를 드리는 종교행위로 돌아가지 말라는 간절한 당부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 밟고…”라는 10장 29절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의 절규(?)가까운 안타까움이 전달됩니다. 여전히 종교 행위를 통한 자기 의로움에 빠지려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십자가 은혜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행한 종교 행위 또는 종교 윤리 실천이 가져다 주는 ‘자기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10장 39절 시작으로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신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정확히는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드렸던 제사와 삶의 발걸음은 ‘믿음’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11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한 명 한 명 나열하며 설명합니다.
2.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잘 될 것이다.’라는 자기 확신(?), 추측, 예상 등은 믿음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기도한 것은 될 줄 믿으라. 하나님이 다 인도하신다. 잘 되게 하신다.’라는 식의 생각(?) 도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적어도 ‘히브리서 11장’이 말씀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기도의 결과물(?)의 어떠함’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해 말하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함축된 믿음의 의미를 풀어 해쳐보면 그 깊이와 넓이를 저의 한계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믿음’에 대하여 나눠보려 합니다.
3.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자기(사람, 인간)에게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인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상식, 자기 의로움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믿을 수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떠나 범죄타락한 죄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믿음이 아니면 믿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 ‘에베소서 2장 1~10절(꼭 찾아서 읽어보십시오.)’은 인간의 생각에서 출발한 종교 신념 혹은 교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 확신, 자기 신념, 자기 원함 등에서 출발하는 ‘굳은 마음의 결정(?)’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믿고, 나의 간절함에서 시작된 어떤 것이 이루어 질 줄 믿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4. 사실 저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 난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선택적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내가 원할 때 꺼내서 문지르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믿습니다.
여전히 위에 설명 드린 것처럼 ‘자기 원함, 자기 욕망, 자기 소원’에서 출발한 간절한 마음, 그 간절한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의 전 영역, 내 영혼과 전인격의 구석까지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습니다. 자아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데까지 나가지 않습니다. 결국,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지, ‘보이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계속 나열되는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에 무엇이 이루어질 것을 믿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믿게 하신 하나님의 선물,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영혼, 보이지 않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1절이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난 잘 모르겠다. 뭐 그렇겠지…’라며 저쪽으로 밀어 놓을 말씀이 아닙니다. 영혼으로 곱씹어볼 말씀입니다.
한낱 인간인 내가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믿는 믿음! 사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보다 더 실상(實狀, Substance, assurance…)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신 믿음,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 어떤 가치로도 평가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땅의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믿음, 선물로 주신 믿음, 보이지 않는 진정한 실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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