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8장 1~13절
1. 주말에 읽으신 ‘히브리서 7장’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유대교적 배경’ 없이 ‘히브리서’를 파악하는 것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덮어버릴 수 없습니다. 가만히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신 구원’에 대해 망설이고, 주저하고, 어려워하던 ‘유대인들(제사장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브리서를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이런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여전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자기 알아서 해석하는 내 모습! 자기 의로움에 속아서 종교 생활하는 어리석은 내 모습! 십자가 복음으로 변화된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간사하고, 얄팍한 내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런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끄시는 성령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기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사는 인생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2.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8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세우신 ‘새 언약’을 강조합니다.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실 때, ‘레위 지파(대제사장 혈통)’를 통해 오신 것이 아니라,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심으로 ‘십자가의 언약’은 완전히 새로운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8~13절).
6절의 “더 아름다운 직분… 더 좋은 약속…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는 단순하게 ‘보다 나은 것(better)’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앞의 것과 비교해서 좀 더 나은 혹은 개선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첫번째 것이 틀렸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첫번째 언약(모세 언약 또는 시내산 언약)을 딛고, 두번째 언약(십자가 언약)이 세워진 것입니다(히브리서 10장 9절).
그래서 7절의 “무흠(無欠, flawless, 흠 없음)”은 ‘첫 언약(시내산 언약, 모세 언약)’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넓게는 ‘구약성경’에 부족함(?) 혹은 모자람(?)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기 까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언약을 세우기 이전 까지만 효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와 인간 제사장이 피를 들고 들어가는 것은 이제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흠”이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3. 이것을 생각하면서 1~5절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대제사장을 뛰어넘는, 아니 비교할 수조차 없는 분이심을 정확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 하반절~2절 상반절에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를 통해 영원 전부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삼위일체 하나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늘로 올라가심)을 통해 하늘에 있는 성소와 참 장막에서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5절입니다. 그 옛날 “모세의 장막” 즉, ‘모세 5경’에 기록된 모든 대속의 제사와 그것을 주관하던 ‘인간 대제사장’은 ‘하늘에 있는 성소, 참 장막의 모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드린 설명조차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글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4. 그러나, 성경은 참 좋습니다. 이 복잡한(?) 설명을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1절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입니다.
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 ‘모든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하늘 성소, 참 장막은 종교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인간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인간,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 없음의 상태(죽음의 상태)’에 머물러 버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곳이 ‘성소(장막, tabernacle)’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자신이 친히 ‘성전(성막, 장막, tabernacle)’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2장 19~21절).
그 옛날 하나님께서 주신 ‘성막(성전)’은 종교 행사를 하는 어떤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입니다.
5.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1절)를 영혼에 새겨봅니다. “있다!”, 너무 흔하게 사용하는 이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없다!”라는 말 속에 담긴 우리 인간의 결핍과 아쉬움을 “이러한 대제사장 우리에게 있다!”로 덮어버립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 무엇이 없습니까? 무엇이 부족하고, 결핍하여 ‘없다. 없다.’를 마음으로 생각으로 입으로 내뱉고 있습니까? (그러고보니 저도 ‘없다’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생긴 우리의 ‘모든 없음(결핍, 부족)’이 예수님의 계심으로 채워지고, 덮어져야 합니다. 그것 외에 ‘없음’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땅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땅(순간)에서 하늘(영원)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사람의 특권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편 73편 25절, 시편 73편 전체를 묵상하십시오.) 라는 이 믿음의 고백이 진리가 되고, 능력이 되고, 생명이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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