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2022년 화요일 묵상
- Hyung Yun
- 2022년 6월 7일
- 3분 분량
본문: 사무엘상 18장 17~30절
1. 주말에 읽으신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17장)은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기적같은 일을 비유할 때 단골로 등장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표현은 익숙합니다.
다윗이 승리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이었을까요? 특별한(?) 사건에 특별히 임하는 ‘하나님의 영(Spirit)’에 감동되었기 때문일까요? 뭔가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였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다윗의 삶의 전반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함께 하심이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특별함’이라는 단어로 제한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라는 특별히 선택 받은 인물’에게 제한하여 바라보면 ‘다윗’을 우상(idols)처럼 여기게 됩니다.
다윗은 승리는 오늘의 삶이 연결된 평범함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윗의 눈에 골리앗은 늘 쫓아내던 ‘곰, 사자’처럼 보였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37절)
2.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된 오늘의 삶이 고될지라도 오늘과 오늘이 연결된 삶이 내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미래가 됩니다.
또한 오늘의 예배가 연결되어 영원한 하늘의 예배로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붙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땅의 생명을 얻기 위한 삶에 속아서 오늘 허락된 하늘의 생명을 놓친다면, 결국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떡을 발로 차버리고, 먹어도 결국 죽음에 이르는 땅의 양식을 위해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단 한 분도 그런 안타까운 ‘먹고 죽을 땅의 양식’만을 구하는 삶을 살지 않으시길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영혼의 입으로 먹기 위해 땅의 양식을 위한 육신의 입을 다물 수 있는 결단이 있기를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3. 다윗 이야기를 하다가 예수님 이야기만 잔뜩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맞습니다. 다윗이 우상처럼 여겨지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것은 다윗을 우상화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기적적인 승리에 몰두하면 ‘다윗 우상화’가 일어나지만, 죄인 다윗을 붙드신 하나님, 죄인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온 오늘을 본다면 ‘다윗 우상화’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좀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나누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묵상도 성령의 감동이라 믿습니다.)
오늘 읽으신 본문에서 악인(?)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사울’입니다. 물론, 제가 ‘사울’을 악마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계략(25절)’을 보면, 나쁜 놈이 맞습니다. 그것도 자기 딸(미갈)을 이용해서 죽이려 합니다. (21절) 사위를 죽이려 합니다. 다윗에 대한 질투와 권력 유지에 대한 욕심에 눈이 먼 사람이 맞습니다.
역시 다윗은 다릅니다. 아니,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멋진 분이십니다. 그런 사울의 계략을 보기 좋게 승리로 바꿔버립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 대신 포피 이 백 개를 갖다 주고 ‘미갈’과 결혼합니다.
4. 여기까지 저도 동의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역사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승리 이후의 삶이 문제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승리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의 계략’입니다.
어떤 계략입니까? 겉으로는 블레셋을 쳐부수는 전쟁에 내보냅니다. 그런데, 사울이 원한 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죽음입니다. 다윗의 죽음이었습니다.
여기서, ‘아!’하는 탄식이 나오시는 분이 있으실 겁니다. ‘사무엘하 11장, 밧세바 사건’이 떠오르실 겁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을 감추기 위해 이용한 계략,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이용한 계략과 같습니다. (사무엘하 11장 14~25절, 이 부분을 가만히 읽으면 다윗의 뻔뻔함이 무서울 지경입니다.)
5. 목동에서 왕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경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대체 그에게 어떤 지혜(?)가 더하여 간 것입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변에 어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삶과 말을 들으며 살아갑니까? 어떤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 그렇게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합니까?
우리도 모르게 ‘왕이 된 사울의 삶’이 부러워 교회 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은 ‘사울’이건, ‘다윗’이건 ‘왕 만들어 줄 수 있는 위대한 신’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종교 부적처럼 생각하는 자기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만약! 만약! 우리에게 이런 종교 생활에 대한 벌벌 떨리는 두려움이 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주님,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울의 계략’을 따라하는 ‘다윗’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영혼의 경보기’가 작동한다면 살아있는 겁니다.
땅의 먹거리를 위해 땅만 쳐다보는 눈을 하늘로 들어올리십시오.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생명의 양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이 나눔을 함께하시는 분들… 땅의 발걸음을 딛으며 살지만, 하늘을 향한 영혼의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실 줄 믿습니다. 진정한 복된 자리, 예배의 자리에서 위로부터 쏟아지는 하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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