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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6월 2일 2021년 수요일 묵상

본문: 잠언 17장 15~28절


1. 잠언을 읽고 묵상하면서 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무거움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하고, 행할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제 심령 깊은 곳에 말씀을 피해 다니는 간사한 심령도 봅니다.

그래서 잠언의 내용이 다른 듯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저를 다양한 방법으로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또한 조금 지킨다고, 비슷하게 행하는 척한다고 자기 의로움에 빠지는 제 자신을 잠언을 통해 계속 확인하고 점검하게 됩니다.


2. 지난 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말씀을 몰라서 안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지킬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나 자신에게 말씀을 적용하기보다 이 말씀을 들어야할 다른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지어 듣고, 읽는 것으로 되는 줄 착각하는 것처럼 황당한 경우도 없습니다.

저는 15절을 보면서 ‘악인을 의롭다. 의인을 악하다.’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제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제 판단과 생각의 기준이 제 자신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성경이 판단 기준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제 자아의 고집스러운 기준을 버리지 않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내가 나쁘면 나쁜 것입니다.’ 신앙 좋은 척하면서 성경에 입각한 균형 잡힌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 좋은 척할 수록 종교적 편협성과 자아도취가 더 심각한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3. 죄악에 오염되고, 죄성에 기울어진 인간 본질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종교, 도덕, 명예, 물질 따위로 아무리 포장해도 이런 인간 본질은 감출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이나 더 자세히 설명하지, 왜 딴소리냐? 왜 했던 이야기 비슷하게 반복하느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결국 잠언을 허투루 읽으신 것입니다. 아니, 성경 전체를 잘못 이해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죄인을 향한! 지혜 그 자체이신 예수님 없이 미련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향한!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너의 의로움과 너의 어떠함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궁극의 구원은 범죄 타락한 너 대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나 여호와의 지혜, 은혜, 사랑, 긍휼, 능력, 영광, 생명이다!”라는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고, 강조되는 것이 잠언을 포함한 모든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4. 하나님의 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녹아 있는 구원을 향한 최고의 지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우리 앞에, 오늘 내게 ‘십자가에 못 박히라.’는 그 영혼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엉뚱한 곳에서 은혜를 찾고, 엉뚱한 곳에서 축복을 바라며, 엉뚱한 곳에서 생명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다시 십자가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나를 돌아보십시오. (24절)

제발,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풀어 놓으신 십자가 은혜를 놓치는 미련한 아들, 하나님의 근심이 되는 아들이 되면 안 됩니다. (25절)

그렇게,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몰라 미련한 길, 멸망의 길, 어리석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진짜 마음이 무엇일까?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예수님 없는 미련한 삶, 예수님 모르는 어리석은 길을 가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 말입니다.


5. 그 답은 16절에 있습니다. 원문을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손에 지혜를 살수 있는 값이 있는가? 그러나, 그들에게는 마음이 없다.”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16절 속에 담긴 속뜻은 “너희 가까이 아니, 너희 손에 지혜가 있다. 너희 바로 앞에 대속의 은혜를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나 여호와가 너희 혈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은혜를 완성했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지혜(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않았다. 영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 너희에게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종교 생활하면서 너 자아를 위해 내가 베푼 대속의 은혜를 이용했을 뿐이다.”입니다.


6. 오히려, 하나님에게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긍휼하게 여겨질 대상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종교화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15절의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에 주목해야 합니다. 역기서 ‘미움(toebah)’은 ‘가증스러움, 혐오스러움’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즉, ‘toebah’는 두 마음을 품은 것, 간사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용한 것에 대한 혐오의 감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종교와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가증함의 감정입니다.

엄격하게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저 십자가 붙들고 하나님께 ‘toebah’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발버둥 치다가 이 땅을 떠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발버둥을 보시며, ‘네가 나의 기쁨이다. 네가 십자가 은혜 붙잡고 발버둥 치는 그 모습이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라고 여겨 주십니다.

우리의 굽어지고, 굳은 마음이 십자가 은혜로 펴지고, 새롭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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