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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6월 29일 2021년 화요일 묵상

본문: 잠언 31장 1~9절


1. 잠언의 마지막 장입니다. 1절에는 누구를 향해, 누가 말한 것인지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르무엘)에게 권면한 내용이 31장입니다.

‘르무엘 왕’은 누구일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전승에 따른 대부분 학자들의 견해는 ‘르무엘 왕’이 ‘솔로몬 왕’이라고 봅니다.

‘르무엘’의 이름 뜻은 ‘하나님을 위한 자’ 또는 ‘하나님께 바친 자’입니다. ‘사무엘하 12장 25절’ 보면 솔로몬 왕의 이름은 ‘여디디야’입니다. 이 뜻은 ‘여호와께 사랑받는 자’입니다. 이 두 이름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름 속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2.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솔로몬 왕이 태어난 배경(?)을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다윗과 밧세바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밧세바가 정식 결혼 한 뒤에 ‘솔로몬’이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가 솔로몬에게 지어준 이름(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여디디야’ 속에 담긴 뜻이 흔히 생각하는 ‘사랑 많이 받은, 특별한 사랑 받은…’이라는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너가 태어나기 위해 한 생명이 죽었다. 죽은 아이는 아무 죄가 없었다. 죄는 나와 네 어미가 지었던 죄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이의 생명을 취하시고, 너를 주셨다.”라는 다윗과 밧세바의 눈물 어린 고백이 ‘여디디야’라는 이름 속에 담겨 있습니다.

3. 이런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뜻: 평화)이라는 이름은 그의 통치 시기, 일명 ‘태평성대(太平聖代, reign of peace)’를 살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이름 지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솔로몬’이라고 칭송하며 부를 때, ‘솔로몬 대왕’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화려한 왕궁에서 국정을 돌보고 의기양양 돌아온 아들을 향해 어머니 밧세바는 “르무엘, 여디디야”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담긴 조금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 아들 ‘르무엘’아… 내 사랑하는 ‘여디디야’야…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태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이런 나와 네 아버지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단다. 겉으로는 우리 가족이 왕족이라는 축복을 받은 것 같지만, 대속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죽은 자들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어머니 밧세바의 절절한 심정이 그 이름 속에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4. 이런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읽으며,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단순하고 피상적으로 여자의 문제, 음주의 문제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신의 종교심과 도덕심 혹은 체질의 문제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이 본문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을 자기 의로움으로 삼아 공격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분별한 음주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절제한 음주로 인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있습니다. 무절제한 음주와 무절제한 식습관은 같은 맥락입니다. 과도한 소비와 유흥, 심지어 지식욕, 명예욕 등도 자기 욕구와 만족에 근거한 것입니다.


5. 따라서 3절의 “네 힘”은 아주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된 것들을 우리의 의지와 뜻대로 사용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하나님의 선물, 은혜, 축복 등’으로 받은 것들을 말합니다. 말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라고하면서 결국, 자기 맘대로 사용하는 우리의 알량한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잠언이 기록될 당시 ‘여자, 포도주’는 일반인들이 넘치도록, 취하도록 누리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 ‘포도주’는 아주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독한 술은 더더욱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취하도록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솔로몬 같은 왕 혹은 귀족, 즉 ‘가진 자’였습니다.

6. 혹시, 이렇게 빠져나가십니까? ‘난 가진 자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내가 원하는 만큼 가지지 못함으로 어떤 것을 더 가지려는 마음’이 있다면, 같은 위험에 노출된 것입니다. 가지게 되는 순간, 가진 힘을 나를 위해 쓰게 됩니다.

7절의 기록처럼 가진 것에 취해 ‘자신의 빈궁함’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잊었습니다. 솔로몬이라는 영광의 이름에 취해 ‘르무엘,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잊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술에 취한 삶’을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술에 취하는 것은 안 됩니다!)

이 본문은 자신이 이룬 것 같은, 자신이 받은 것 같은 갖가지 축복에 취하여 인간의 본질!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 없으면 죽은 자보다 더 비참한 나의 본질을 잊고 살아가는 삶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은혜에 묶이지 않으면 나는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라는 영적 간절함이 저와 여러분의 십자가의 진리로 인도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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