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84편 1~12절
1.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들에 의해 기록된 것입니다. (시편 42~49, 84~85, 87~88편) 이 시편을 읽어보면 익숙합니다. 1, 5, 10절 등은 줄줄 외우지는 못해도 한번쯤은 들어본 구절입니다.
시편 84편은 말 그대로 ‘서정적’입니다. 시인의 감성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 그 목마름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 42편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42:1)에 버금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편 42편도 고라 자손의 시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런 간절함을 품고 본문을 한번 더 읽어보십시오. 한 구절 한 구절이 여러분의 기도와 고백이라 믿고 읽어보십시오.)
1절의 “주의 장막”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성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2절의 “여호와의 궁정”을 화려하게 꾸며 놓은 궁궐같은 건물을 떠올리면 안 됩니다. ‘위대하고,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 이미지’를 벗어야 합니다. 그런 식의 생각은 자칫, ‘건축물 숭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우리 꼭 기억합시다. “주의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덮으심이 천막처럼 죄인을 덮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장소가 ‘주의 장막’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덮으시는 임재 그 자체가 “주의 장막”입니다.
이걸 좀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이 지은 건축물’ 또는 ‘사람이 만들어 정해 놓은 장소’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덮으시는 은혜, 죄인을 가려주시는 은혜가 있는 곳이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직접! 찾아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완성된 곳이 어디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기 위해 육체를 입고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 대신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그렇게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가려주셨습니다. 여전히 죄인이지만, 이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은혜의 보좌,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
3.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이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보금자리!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보호받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3절)
하나님의 덮어 주시는 은혜, 죄인을 가려주시는 은혜가 ‘주의 궁정’이라면, 그 반대가 ‘악인의 장막’입니다.
‘악인의 장막’은 단순히 부도덕한 것들이 넘쳐나는 곳, 갱단이 거주하는 동네, 타락한 어떤 곳, 더러운 장소 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장소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런 곳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깨끗하고,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보여도 ‘십자가 은혜’로 가려진 바 되지 않으면 ‘주의 장막’이 아닙니다. 십자가 은혜 앞에 엎드린 영혼들이 모인 곳이 아니면 ‘주의 장막’이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 교회 규모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나! 그때 죄악된 나를 가려주시는 은혜,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이 있냐로 판단되는 것입니다.
4. 저와 여러분의 삶, 또는 교회의 외적 모습이 초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시온의 대로”가 있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5절, “시온의 대로”는 하나입니다. 큰 길이 아닙니다. 뻥 뚫린 멋진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사형통(萬事亨通)하는 인생의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하나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딱 한쪽을 향하는 길이 ‘시온의 대로’입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죄인을 대속의 은혜로 가려주시는 곳)을 말합니다.
굳이 장소로 말하자면,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의 주요 도로, 가장 큰 길을 ‘예루살렘(시온)’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가장 큰 길(시온의 대로)은 ‘성전’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이렇다할 표지판이 없어도, 가장 크고 잘 닦인 길을 가면 ‘예루살렘’ 그렇게 ‘성전’으로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시온의 대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길’입니다. 십자가를 향한 그 하나의 길 외에 성경은 다른 길을 말하지 않습니다.
5.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네, 이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어도 ‘눈물 골짜기’를 지나간다고 합니다.
사실, 고대 이스라엘의 많은 길은 ‘골짜기(계곡)’이었습니다. 특히, 건기에는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고산지대에 있는 예루살렘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주의 장막’을 향하는 길은 메마른 골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샘’이 있다고 합니다. 물이 콸콸 흘러 첨벙첨벙 수영할 수는 없지만, 졸졸 흐르는 샘, 마른 목 잠깐 축일 수 있을 정도의 샘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의 물을 공급받지 못해도… 목이 말라 지쳐갈 즈음에 갈라지는 입술과 목을 축일 샘이 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는 길이 험하고 힘들지만, 이런 은혜를 맛본다면 견딜 만하고, 버틸 만한 줄 믿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저보다 더 ‘눈물 골짜기’같은 인생의 길을 걸으신 줄 믿습니다. 이런 인생길을 통해 고관대작(高官大爵, high and prominent office)이 아니라, ‘’성전 문지기”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그 장막 아래에 늘 거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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