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28장 19~28절
1. 잠언 28장의 전체적인 흐름은 경제적, 정치적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남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독교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런 해석과 적용은 필요합니다.
우리 삶에서 윤리적, 도덕적 열매가 맺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삶의 열매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 이 땅의 삶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2. 오늘 본문 한절 한절을 묵상해보십시오.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가슴 아플 뿐입니다. 그래서 더 기도하게 합니다. 우리의 전인격을 드려 결단하며 십자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렇게, 내 속에 예수님께서 이런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으실 수 있도록 나를 죽이는 것이 기뻐집니다.
잠언 묵상을 함께 나누며 이런 마음이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글로 쓰는 어려움이 컸던 만큼 그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똑똑한 솔로몬, 축복받은 솔로몬의 지혜집으로 읽었을 때와 다른 성령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깊은 마음의 반성과 진심 어린 권면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3. 잠언 묵상 글은 오늘로 마지막입니다. 하찮은 제가 기록한 글보다 성경 말씀 자체에 마음을 두고 계속 읽으십시오. 다른 성경을 읽으시면서 잠언, 시편 등은 조금씩 함께 읽으십시오.
(뭔가 글을 계속 쓴다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져, ‘썼다, 지웠다.’를 반복합니다. 말씀을 제 심령에 비추기도 벅찬데,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는 것이 큰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제 솔직한 심정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래서 모든 말씀이 다가옵니다.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대로 내 삶에서 드러나도록 기도하며, 결단하십시오. 그래야 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자기 이익에 빠른 나, 자기 핑계에 능숙한 나, 자기 욕망에 사로 잡힌 나를 십자가에 붙들어 매십시오.
4. 이 마음으로 말씀을 읽으며 또다시 살아서 펄펄 뛰는 자아를 예수님께 굴복시킵니다. 그렇게 25~26절을 보면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풍족함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 자아의 욕심을 따라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 자신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가득 찬 자기 의로움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 심령은 전쟁터가 됩니다. ‘난 뭔가 달라. 난 저들보다 나아.’라는 영혼의 턱 끝까지 차오른 자기 정의감을 비우지 못하면 우리 심령은 독이 잔뜩 오른 독사처럼 반응합니다.
25절의 ‘욕심이 많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rachab’는 ‘교만한’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넓은, 광대한, 어마어마한 등’으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성령 충만’이 아니라, ‘자아 충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령 충만’을 ‘자아 충만’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추구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날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5. 사람의 욕망과 바람으로 채워진 것은 하나님과 무관합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채워졌을 때,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오히려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셨다고 확신하는 것일 수록 더욱 그래야 합니다.
이런 영혼의 태도가 우리를 진정한 겸손으로 이끕니다. 자기 마음을 믿는 미련한 삶, 자기 마음의 욕심을 포장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간교한 삶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스스로 죽으려는 의지도 없고,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내 자아가 그런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녹아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말씀 앞에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미꾸라지 같은 내가 말씀의 그물에 걸리고, 십자가의 바늘에 꿰지는 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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