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무엘상 30장 1~20절
1. 블레셋의 편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전투에 휘말릴 뻔했던 다윗이 돌아옵니다. 그가 머물렀던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을 되돌아옵니다. 다윗은 무슨 생각을 하며 돌아왔을까요?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며 돌아왔을까요?
크게 세가지로 나눠질 것 같습니다. 첫째, 29장 8절이 다윗의 지혜(?)에 의한 다윗의 연극이었다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두번째, 정말 싸우려는 것이 진심이었다면 ‘아깝다(?), 기막힌 기회를 놓쳤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번째, ‘아무것도 모르는 다윗’이라면 곰곰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나간 ‘그 전쟁터(아벡)’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니,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도 기도하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지금 ‘아기스’를 따라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것이지?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난 지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싸우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난 이렇게 돌아오고 있다. 하나님… 하나님…”이라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2. 이 영적 질문, 3일의 영적 질문, 머리 아플 정도의 수많은 질문이 있었기에 6절의 기도가 있을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기도는 그냥 급하다고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 이런 나를 돌아보는 진실된 묵상이 없으면 진정한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기도는 급할 때 ‘살려주십시오’가 아닙니다. 기도는 묻는 것입니다. 그 절박한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 절박한 상황을 해결해주겠다는 응답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박한 상황마저 견디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다는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당연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되는 것 조차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NO!라고 말씀하셔도 됩니다.”라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NO!’라고 말씀하신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왜냐면, 기도의 출발, 그 대부분이 ‘자아의 죄성, 그 속에 숨은 나의 원함, 요구, 바람, 성향, 성격, 스타일 등등’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면서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도함 받고, 원하지 않는 결과가 주어졌을 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원했던 것, 제 생각으로 만든 계획, 제 성향에 끌리는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이 알게해주셨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이 맞이한 상황은 처참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꾸역꾸역 걸어갔던 곳, 그게 맞는 줄 알고 장군이라도 된 줄 알고 간 곳은 전쟁터였습니다. (‘아기스’에게 잘못 보이면 안 되니까 머리를 써서 갔다고 해도 그 전쟁이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알면서 그러는 것도 참 많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내 머리 속의 계산기를 돌려보면 될 것 같아서 결정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결국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왔을 때 펼쳐진 상황이 ‘약탈당한 시글락’같을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해 돌을 던지려는 급박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1~5절).
그런데, 진짜 다행입니다. 그 긴박함 속에서 엎드렸습니다. 엎드려 하나님에게 다시 기댑니다. 그 분에게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6절)
그렇다고 바로 칼을 들지 않습니다. ‘시간의 긴박함(이럴 땐 ‘급함, 조급함’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합니다.)’도 ‘그 일의 당연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은 종교, 역사, 민족적 감정 등등 그 어떤 것으로도 당연한 것이지만, 또 하나님께 엎드려 물었습니다(7~8절).
4. ‘약탈 당한 시글락’ 아프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이 다행입니다. ‘돌아온 다윗’과 ‘돌아오지 않은 사울’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그때라도 돌아오고, 그때라도 엎드리고, 그렇게 ‘아말렉’을 쫓아간 것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꼭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본성 반대로 해보십시오. 급한 그 일, 당연한 그 일, 나의 선택에 누구도 토달지 않는 그 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타이틀을 얼마든지 붙일 수 있는 그 일 앞에서 ‘바보처럼 엎드려… 죽은 자처럼 엎드려… 기도해보십시오.
혹시, 그렇게 기도하지 않고 벌어진 ‘시글락 같은 상황’이 있다고 해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내가 엎드려 돌이킨다면, 거기서 멈추고, 내려놓는다면… ‘병든 애굽의 소년’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16절 이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31장에서 꾸역꾸역 ‘그 전쟁터’에서 나간 ‘사울의 길’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 전쟁터’를 떠나는 은혜, ‘아무것도 모르고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를 생각에 빠진 어리석은 나’를 건져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내 생각 반대로 되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위해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사람인 저도 그립지만, 하나님이 더 그리워하십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결제 도장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하는 우리,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이 내 삶에 온전히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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