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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6월 23일 2021년 수요일 묵상

본문: 잠언 28장 1~18절


1. 잠언 28장을 겉으로 읽으면 의인과 악인,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단순한 비교로 보입니다. 도덕, 윤리의 잣대로 해석하면 전혀 어려울 것이 없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삶에 상대적 의로움과 부유함(?)을 가지고 스스로를 평가하게 됩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솔로몬의 인생이 어땠습니까? 솔로몬과 관련된 성경(열왕기상, 역대하)을 꼼꼼하게, 냉정하게 읽으면 일반적인 솔로몬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지혜, 부유함, 축복의 대명사로 알려진 ‘솔로몬’의 어두움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이방여인들과 결혼한 것을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덮을 수 없습니다. 북이스라엘로 갈라진 원인을 ‘여로보암(북이스라엘의 초대왕)’에게 떠넘길 수 없습니다. 잠언을 기록한 것으로 그가 성경기록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칭송할 수 없습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것으로 ‘그래도 마지막에 돌이켰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 없습니다.


2. 솔로몬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솔로몬이 끝까지 붙든 것이 ‘나 같은 죄인에게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였느냐, 아니냐?!’입니다.

여전히, 자신이 누리는 부유함과 똑똑함, 인기 따위를 자기의 의로움으로 여겼다면…! 그렇게 ‘의인과 악인,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어떤 말을 기록했다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될 수 없습니다!

1절의 ‘악인’은 인간 본질입니다. 그 어떤 화려한 것으로 가려도 ‘죽음’이라는 궁극의 심판 앞에서 두려워하는 인간 본연의 성질을 말한 것입니다.

‘의인’은 상대적 의로움의 기준을 가지고, ‘난 그 일에 대해 떳떳해. 난 꿀릴 것이 없어. 난 정의로운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자기를 평가하고, 사람에게 평가받는 수준이 아닙니다.

‘나는 어찌 할 수 없는 본질적인 죄인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에 기대어 의롭다 여김을 받은 존재이다.’라는 믿음이 궁극의 심판, 죽음 앞에서 나를 사자처럼 담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7절을 함께 묵상하십시오.)

3.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번역된 기독교 용어를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3절에 ‘율법’은 단순한 종교 윤리, 규례가 아닙니다. ‘율법(히브리어: torah, 영어: law)’이라는 언어적 표현으로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 타락한 인간에게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잠언을 비롯한 모든 성경을 보면서 부분적으로 행한 ‘율법 준수 행위’를 자신의 의로움으로 삼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지키지 말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나에게는 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없지만, 이런 나는 십자가에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줄 믿고 나를 드려야 합니다. 나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성품과 삶, 행함이 드러나야 합니다.

4.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7절의 표현을 보면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음식을 탐하는 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zalal’은 ‘가볍게 여기다. 경멸하다.’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물론, ‘욕심이 많은, 탐욕스러운, 게걸스러운’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탐욕과 욕심, 게걸스러움은 어떤 대상을 가볍게 여기고, 경멸하기에 나타나는 인간의 반응입니다. 귀한 것은 ‘탐욕과 욕심’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7절을 읽으실 때, “율법을 종교 규례, 도덕 규범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대속의 은혜를 붙드는 자가 진정한 지혜(여호와 하나님)와 함께하는 아들이다. (더 엄격하게는 ‘아들’도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버지(여호와 하나님)를 욕 되게 하는 것은 죄인에게 베풀어준 대속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경멸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5. 기도는 영혼을 낮추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하늘 끝 모르고 올라가는 내 마음을 십자가에 붙들어 매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게 내 속에 가리고, 숨기고 싶은 것들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13절이 더 다가올 것입니다. 자기 ‘죄를 숨기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것입니다.

‘내가 오른 자리, 내가 얻은 것, 내가 누리는 것, 내가 이룬 것 등’으로 인간 본성의 어떠함을 가리려는 것이 진짜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행한 것이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가리기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합니다.

영혼을 썩어질 것들로 덮어두지 맙시다. 썩어서 냄새나는 자리에 내버려두지 맙시다.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십자가 사랑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저의 썩어 냄새나는 모든 죄악과 부끄러움을 예수님께서 가려주셨습니다. 십자가에 흘린 보혈로 덮어주셨습니다.

가리고, 덮은 것에서 끝나지 않으시고, 그것을 수술하십니다. 수술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의 불로 완전히 태우십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십자가 앞으로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심, 덮어주심!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심을 간구하며 십자가로 더 가까이 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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