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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6월 17일 2020년 수요일 묵상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16절


1.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예배’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2~16절)은 예배 때 머리에 수건(천)을 쓰는 문제입니다. 내일 말씀(17~34절)은 성만찬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을 ‘종교 의식(예식)’에 관한 지침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예배 시간에 모자를 쓰면 되느냐 안 되느냐, 천주교의 미사포는 옳으냐 그르냐’에 관한 종교논쟁에 관한 ‘증거 구절’로 사용하게 됩니다. (실제, 천주교에서 미사포를 쓰는 근거를 이 구절에서 찾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조각상을 보면 황제나 남자 제사장들이 우상 신전에서 기도하거나 술을 바칠 때 ‘긴 겉옷(토가)’을 머리로 끌어 쓰고 의식을 했습니다.

또한 기혼인 여자들은 공적 자리에서 참석할 때, 머리에 천(베일)을 씀으로 결혼한 신분을 나타냈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위의 두가지 로마식 풍습이 교회 내에서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바울이 4절을 이야기한 배경은 ‘고린도 교회의 남성 신도들이 로마식 종교 의식(토가를 머리에 쓰는 것)을 교회로 끌고 들어오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반면, 5절을 이야기한 배경은 ‘기혼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주장하기 위해 공적 교회 예배에서 머리에 베일 착용을 거부한 것’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들에게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뭘 쓰려고 하느냐?”라고, 여자들에게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벗으려 하느냐?”라는 내면의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3. 그래서, 마지막 16절을 듣고 뜨끔해야 정상입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이 속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을 믿은 것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것입니까? 그렇게 그 새로운 종교를 핑계로 당신들의 이익 혹은 새로운 삶의 습관 변화, 인생의 주도권 변화를 선점하려는 것입니까? 그래서 ‘뭘 쓰고 말고’의 문제를 논쟁거리로 만들었습니까? 미안하지만, ‘하나님의 모든 교회(십자가 복음, 성령의 임재로 세워진 교회, 각 사람)’은 이런 것으로 논쟁하고, 싸우지 않습니다. 내 자아의 본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심령을 비춰봅니다. 그리고 돌이킵니다.”

그리고 내일 본문, 성만찬으로 이어집니다. 모여서 쓸데없는 것으로 논쟁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에 한정 짓는 다면… ‘뭘 쓰고 말고’로 논쟁할 때, 그 말을 하는 자신의 본심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네, 각자의 주장, 옳음, 판단, 생각이 난무할 때…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증명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으로 충만할 때, 십자가 바라보며 내려놓기가 어려운 줄 압니다. 솔직히, 어렵다기 보다는 내 옛 자아가 싫어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나에게 새생명 주시기 위해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손과 발, 전인격을 올리십시오.

무엇보다, 평소에 ‘십자가에 못 박힘’이 기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 생각 반대로 되는 것, 내 주장 버리는 것에 감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엎드리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어, 진정한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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