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24장 23~34절
1.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23~29절은 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30~34절은 성실한 삶을 살아갈 것에 대한 권면입니다.
재판에 관한 말씀은 법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라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에서 항상 판단, 평가,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삶에 대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물론, 휴식없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크고 작음에 상관없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2. 그러나 이런 삶은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재판, 성실한 삶은 세상의 윤리에서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재판의 공정함과 삶의 성실함은 사람의 삶을 견고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윤리와 기독교 윤리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물론, 기독교 윤리라는 표현은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의 윤리적 삶의 결과물과 기독교 윤리에 입각한 삶의 결과물은 같아 보입니다. 선행과 모범이라는 윤리적 단어로 표현이 가능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근원이 다릅니다. 세상의 윤리는 행하는 주체가 ‘사람’입니다. 칭찬을 받는 대상도 ‘사람’입니다.
그에 비하여 성경의 윤리는 행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칭찬을 받는다면 ‘나 대신 사시는 예수님’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3. 인간의 부지런함, 의로움에 대해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의 이익과 연결된 것에 성실한 것이 인간입니다. 귀찮고 싫어서 안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귀찮고 싫어도 나에게 유형 혹은 무형(칭찬, 명예 등)의 이익이 올 때 성실한 것이 인간입니다.
정말이지, 그토록 성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 성실함의 결과로 내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알고 계십니다. 진정한 재판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 일, 그 것, 그 대상, 그 사람’에 대하여 저와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동기(motivation)을 알고 계십니다. 1절의 기록처럼 겉으로 드러난 “낯”을 보지 않으십니다. 드러난 행위 혹은 포장된 결과물을 보시지 않습니다.
그 동기, 그 시작, 그 출발,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십니다. “도대체, 네가 그것을 행한 이유가 무엇이냐? 왜 그것을 그토록 열심히 하고 있느냐?”를 물으십니다. (반대로 그것을 행하지 않고, 게으른 이유도 물으십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이런 질문 앞에 ‘복음전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종교 구호를 갖다 대면 안 됩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4. 저와 여러분의 삶을 움직인 힘, 동기(motivation)가 무엇이었습니까? 왜 그렇게 죽을 것처럼 그 일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그것이 내 뜻대로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가요? 아니면, ‘내가 그렇게 해야 하고, 나만 그렇게 되야 하는데’라는 질투 혹은 경쟁심이 나를 움직인 것은 아닌가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우리의 뻔뻔한 ‘낯’을 보지 않으십니다. 거짓된 미소로 포장한 ‘낯’을 보지 않으십니다. 윤리와 종교로 예쁘게 꽃단장한 ‘낯’을 보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나 대신 행하시는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무시하시는 분은 안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신앙 양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껍데기를 벗겨낸 우리의 ‘민 낯’을 보십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가릴 수 없는 인간 본성의 간악함을 보고 계십니다.
그 ‘민 낯’같은 우리의 심령을 고발하기 위해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으시고, 가려주시기 위해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나 대신 십자가에 먼저 못 박히신 채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재판장이 되신다는 것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주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움직이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긍휼로 씻으시고, 덮으시고, 가려주십니다. 저주와 두려움에 떨던 나를 따스한 사랑으로 녹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우리의 얼어붙은 우리의 심령이 녹아 내리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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