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24장 1~22절
1. 성경을 읽을 때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적 한계를 염두에 두고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잠언을 읽으시면서 그런 점을 더 느끼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수천 년 전이라는 시간의 간격은 가늠하기 힘든 것입니다. 시간의 간격 외에도 환경, 문화, 관습, 언어, 사상 등등의 차이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줄줄 외우는 것, 신학과 성경해석학을 동원한 탁월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 앞에 엎드린 마음입니다. 내 영혼을 비추시는 은혜를 간구하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그때 이 말씀을 기록한 그 사람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성경 기록자를 감동하신 성령님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2. 한동안 강조하지 않았던 것 같아 다시 말씀드립니다. 글자로 드러난 잠언의 내용이 아니라, 잠언을 기록하는 솔로몬의 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똑똑함과 부유함을 가지고 살았던 나를 본받으라! 너희도 나처럼 살아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많이 주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나를 위한 인생을 사는 데 그 모든 것을 이용했다. 나를 본받지 말아라! 너희는 나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그의 아픈 고백이 보여야 합니다.
3. 이런 마음으로 1절을 가만히 읽어보십시오. 이것이 단순하게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어떤 사람들을 향한 솔로몬의 경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이 부러워 그들처럼 살고 싶었던 사람’이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민족, 국가들의 공주(혹은 왕실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결혼동맹이라는 탁월하고, 안전하고, 든든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기발한 외교전략을 짜냈습니다.
4. 잠언을 ‘솔로몬의 지혜 모음집’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보면 차라리 안 읽는 것이 나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대속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속에 담긴 참 지혜’를 절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솔로몬의 반성문(?)’이라는 마음으로 읽으면 정말 다르게 보입니다. 1~2절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이렇게 보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 그 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형통할 수 있다. 이스라엘 주변에 그런 국가와 민족들이 많았다. 특히, 애굽! 애굽처럼 되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부러웠었다. 그 부러움을 벗어나기 위해, 그들보다 잘 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내가 택한 것은 ‘정략결혼’이었다. 그렇게 잠깐 잘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나와 함께 있었던 여인들이 품은 마음, 그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이 나를 혼미케 하였고, 그렇게 나는 걸어서는 안 되는 길로 걸어갔다.”라고 말입니다.
5. 이렇게 말씀이 보이면 3~4절에 기록된 ‘집을 세우는 방법’이 무엇인지 바로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집’은 크게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작게는 ‘각 개인, 한 영혼’이라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은 절대 똑똑함, 학식이 많은 것 등이 아닙니다. 6절이 말하는 ‘전략, 지략’ 역시 세상이 말하는 ‘빈틈없는 계획과 조사, 연구 등’을 바탕에 둔 ‘전략, 전술’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날카로운 똑똑함(?)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느린 듯 부드러운 지혜’를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13절의 ‘꿀’)속에 담긴 대속의 은혜는 ‘내가 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송이꿀 같은 하나님의 말씀, 그 속에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묵상할수록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요?
그러지 못하는 내가 예수님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엎드리고,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타고난 성품이 느리다 못해 게으른 경우는 반대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급하고, 이기적입니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에는 느긋합니다. 결국,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저도 늘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고, 기도합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그 사랑에 녹아 본성 반대로 행하는 것이 기쁨이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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