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전서 7장 1~24절
1.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7장의 내용은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1절) 그 질문은 ‘부부에게만 허락된 관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사도 바울이 자신처럼 ‘독신을 장려한 것’으로 보거나, 결혼 생활의 목적을 ‘음행을 피할 목적’이라는 식의 단순한 해석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7절에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한 것에 대한 ‘전제’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초대교회 지도자들(사도들, 예수님의 제자들) 및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곧 재림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적으로 적어도 자신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의 “내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이 ‘사람과 이 땅의 시간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예: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장 8절)
따라서 비교적 초기 서신서에 속하는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만해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 본문 같은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6절)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내용이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부 생활과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권면인 줄 믿고 대해야 합니다.
2. 먼저 2절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를 보십시오. 이것은 ‘결혼이 음행을 피하는 수단’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죄의 유혹(음란 뿐만 아니라, 탐욕에 기반한 모든 유신의 유혹)’에 노출 되었을 때 여지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죄성과 나약함을 나타난 것입니다.
죄는 피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노출될 환경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곳에 가지를 말아야 합니다.
조심했음에도 노출되었을 때는 ‘육신의 눈, 마음의 눈’을 감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엎드려 죄에 대하여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또한 3~5절은 ‘한 몸’인 부부가 서로 ‘죄와 사탄의 유혹’을 피할 수 있도록 함께 배려하며, 허락된 관계 속에 거하라는 뜻입니다.
7~9절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독신 장려’ 혹은’ 정욕을 피할 수단으로 결혼 또는 재혼’을 택하는 것으로 단순히 이해하면 안 됩니다.
10~16절 역시, ‘이혼의 조건’ 혹은 ‘불신 결혼의 목적’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본문을 ‘자신이 불신 결혼을 한 이유가 전도를 위한 사명이다.’라는 증명 본문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식의 적용은 너무 나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지금 배우자와 결혼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마음’에 이끌려서 한 것입니다. 이걸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문제해결이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렇게 17~24절은 ‘지금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르심’은 ‘이 땅에서의 사명 감당’을 위한 ‘부르심’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너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그대로, 죄인인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으로 불러 주셨다.”가 담겨 있습니다.
3. 한정된 분량, 제한된 표현, 모자란 글로 오늘 본문 속에 담긴 영적인 내용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죄성을 가진 나는 죄의 유혹을 스스로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죽을 것처럼 붙들게 됩니다!
‘나의 모습이 어떠하건, 용서하시고, 살리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불러 주시는 음성’을 듣고 달려가게 됩니다!
십자가에 붙들리고, 못박힌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죄의 종이었던 나를 예수님 피로 대신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길 축원합니다!(22~24절)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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