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7편 1~17절
1. 오늘 본문, 시편 7편의 표제에 ‘식가욘’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식가욘’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그 뜻이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에서는 ‘프살모스, 곧 ‘찬미의 노래’라고 번역했습니다.
또한 ‘베냐민 사람 구시’역시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이 시편을 기록한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시편 7편의 내용과 표제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대하여)”를 봤을 때 ‘베냐민 지파의 구시’라는 사람에게 다윗이 억울한 일, 거짓 모함 등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사무엘하 16장, 24~26장을 보면 ‘베냐민 지파 시므이’의 저주로 고통 당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2. 오늘 본문 속에는 다윗의 속상함, 억울함, 비통함 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사람에게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위로에 목말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관계, 술수, 인맥 등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엎드려 아뢰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마음의 상태,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태도입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아뢰었습니다. 형식, 체면, 예의 등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마음의 상태 그대로를 아뢰었습니다. 1~2절에 잘 드러납니다.
3~5절에서는 다윗은 ‘자신의 무죄?’를 항변합니다. 억울함에 대한 강한 호소를 합니다. 좀 격하다 싶을 만큼 하나님께 아룁니다.
6~8절에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판결을 간구합니다. 9~10절은 ‘일의 결과, 상황의 결과 등’,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며, 인간의 판단 기준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9절)하시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신다(10절)’는 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11~16절은 인간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기준 앞에 회개치 아니하는 자들에 ‘심판의 엄중함’입니다. 결국 그들이 행한대로, 그들이 뿌린 삶의 씨앗의 열매를 먹는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3. 이 시편을 보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5절을 보면서 ‘다윗이 무흠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잘 못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5절의 고백처럼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해석은 ‘사람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삶에서 ‘최선을 다해 정직, 공의, 사랑, 윤리 등’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의로움’으로 작용해서는 안 됩니다.
9~12절을 다시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9절), 마음이 정직한 자(10절),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12절)” 이라는 고백을 볼 때 뜨끔하고, 섬찟해야 합니다.
“난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는 밑도 끝도 없는 종교성, 그것도 “십자가의 의로움이 내게 전가(옮겨 짐) 되었다.”라는 말 그대로 ‘신학적 서술’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좋은 말( 심지어 그것이 복음이라도)을 들었다고 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예레미야 17:9)
네, 12절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은 다윗을 모함하고, 대적하는 ‘베냐민 사람 구시’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공격하는 ‘저 사람,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 저와 여러분, 모두가 포함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삽니다. 내가 아닌 예수로 삽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땅에 살기에 온갖 일들을 겪습니다. 그 모든 일들의 원인은 ‘저들, 그들, 그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분명 ‘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엎드려 간구해야 합니다. “저의 양심,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회개하고 돌이킬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히 억울하고, 뻔히 저들의 잘못인 줄 알아도 무조건 엎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억울하고 속상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인하여 자신을 붙들어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대할 때, ‘억울했던 그 사건, 그 일’이 떠오르기 보다, ‘회개, 돌이킴, 돌아봄’에 마음이 끌려야 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허물어질 ‘사람의 의로움’을 붙들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방패 삼습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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