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3장 1~10절
1. 오늘 본문도 “내 아들아”로 시작됩니다. 솔로몬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솔로몬이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며 후손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담겨있을 것입니다. (이런 반성이 없다면,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1절에서 말한 ‘나의 법, 나의 명령’은 혈연관계의 아버지가 제시하는 법 혹은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빗대어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과 명령입니다. 그 중심에는 ‘대속의 은혜’가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베푸신 대신 제물 드림으로 용서와 구원에 이르는 긍휼을 붙잡는 것이 ‘나의 법과 명령’입니다.
아버지의 권위, 가장(家長)의 권위를 중요시하던 한국 사회에서 이런 말씀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2. 인간의 간사함은 2절의 축복, 4절의 축복, 9~10절의 축복을 받기 위해 1, 3, 5~8의 말씀에 순종하려 합니다. 즉, 2, 4, 9~10의 결과물이 있기에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심하게는 ‘죄인인 척 시늉’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십자가라는 종교 상징물을 자기 머리에 이식(移植, transplantation)하고 있습니다. 네, 전인격적 영접이 아니라. 기계적 이식 말입니다.
우리 냉정하게 이런 질문 좀 해봅시다. 2절의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것이 정말 ‘육신의 생명’이 길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럼 저는 묻고 싶습니다. 첫째,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장수(長壽, longevity)’입니까? 과거엔 60세만 살아도 장수라고 말했습니다. 21세기 소위 100세 시대를 사는 지금은 어떤 가요? 또 의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미래에는 얼마나 살아야 ‘장수’ 축에 끼는 걸까요?
둘째, 그저 오래 살기만 하면 됩니까? 건강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셋째,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복음을 위해 살다가 젊은 날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성경이 말하는 ‘장수’가 오래오래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든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몸부림과 두려움으로 신앙생활(사실은 무속생활)하게 됩니다.
3. 성경이 말씀하는 ‘장수’는 단순히 육신의 생명이 길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절의 “나의 법”은 종교 계명이 아니라, 대속의 은혜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公義, God’s righteousness)의 법, 생명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관점으로는 율법 속에 담겨 있는 대신 제물 드림을 통한 죄사함과 구원을 믿음으로 붙드는 것입니다. 동시에 오실 메시야(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가 완성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과 영혼의 태도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장수와 평강’(영혼의 구원, 영적 생명, 진정한 평강)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4. 이런 마음을 붙잡고 민감한(?) 내용인 9~10절로 가보겠습니다. 정말,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 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일까요? 이런 것도 맞습니다.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드리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행위, 아무리 대단한 것들을 드리고, 훌륭한 종교적 사명을 감당해도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신 예수님 뿐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을 공경, 즉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존중하고, 공경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 분의 십자가를 붙든 믿음의 태도, 삶의 태도를 가지고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사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가 여호와를 공경하는 삶을 사는지 알게 됩니다. 이것이 4절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붙들려, 내 속의 모든 죄악과 자아가 못박히고, 성령의 불로 태워진 그 자리, 그렇게 정결하게 된 우리 안에 ‘새포도주’이신 예수님의 생명이 흘러 넘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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