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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5월 5일 2020년 화요일 묵상

최종 수정일: 2020년 5월 6일

본문: 시편 5:1~12절

1. 어제 보신 ‘시편 4편’과 오늘 본문 ‘시편 5편’을 보시면, 다윗 시편이면서 ‘인도자(지휘자)를 따라 ‘관현악’에 맞춘 노래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관현악’이 오늘날의 ‘오케스트라’ 수준은 아닙니다. 또 ‘노래’도 흔히 생각하는 ‘합창곡, 찬양곡 등’이 아닙니다. 하지만, 레위지파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악기(고대 악기)를 다루고, 노래(낭송)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역대상 15, 16장 참고)

시편 5편은 ‘개인 탄식시’로 분류하지만, 3절의 “아침에”와 7절의 “성전을 향해 예배하리이다”를 미루어 볼 때 ‘성전에서 아침 예배’를 드릴 때 불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물론, 언제 불렀는지, 어디서 불렀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록자인 다윗, 또 이 시편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침에” 즉,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첫 시간을 드린다는 것은 ‘하루 종일,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섭리에 맡겨 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경험했습니다. 보았습니다. 세상의 악함, 거짓, 교만, 간사, 포악 등을 체험했습니다. 9절에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1~3절의 기록처럼 ‘억울하고, 상처받은 심령’을 ‘아침마다, 순간마다’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아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공격과 속임수에 노출되어 본 사람은 ‘세상 방법의 대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도 잘 압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울부짖는 목소리로 심령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 본능’입니다. 어린 아이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 본능처럼 ‘엄마’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위험의 상황, 극한의 상황’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

3. 지금 우리가 맞이한 이 안타깝고, 한치 앞을 모르는 사건, 상황 앞에서 ‘저와 여러분이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내 안에 생명으로 역사하는 예수님이 계신다면 반드시 ‘영적 본능’으로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더욱 찾게 됩니다.

7절의 고백처럼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라는 간절함이 솟아오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4. 저와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상황이 익숙해져서 ‘영적 민감함, 영적 경계심’이 희미해진 것은 아닙니까? 그냥 이대로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닙니까? 깨어나야 합니다. 다시 주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말씀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배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7절) 성령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만이 참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12절)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피한 저와 여러분에게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12절)는 말씀이 삶 속에 그대로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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