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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5월 29일 2020년 금요일 묵상

본문: 하박국 2장 2~11절


1. 오늘 본문은 ‘하박국 선지자’의 두 번째 질문(“왜 가장 교만하고 악한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를 심판하십니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을 사용하시는 직접적인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그 바벨론 역시 자신들의 교만과 죄악으로 멸망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2~3절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 가운데 ‘그 종말’ 그러니까, 가까이는 ‘유다의 종말’, 더 가까이는 ‘바벨론의 종말’, 먼 미래에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종말’이 분명히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종말, 심판, 멸망’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새로운 ‘시작, 회복, 구원’을 위해 ‘종말의 때’를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은 ‘종말’을 통한 ‘구원’의 대전제를 4절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찬송의 가사로도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일명, ‘믿음 좋은 사람, 신앙 좋은 사람’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세상을 승리하며 살다가 천국가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 정직하지 못하나”라는 것은 ‘자신이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됨에 대한 철저한 인정없이 그저 신적 능력을 얻어내기 위한 종교적 겸손을 떠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바벨론 사람들(왕, 위정자, 종교인 등)’도 ‘유다 사람들(왕, 제사장 등)’도 나름의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바벨론의 왕은 바벨론의 신(마르둑 등)을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대했습니다. 제사 등의 종교행위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의 왕, 제사장, 백성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종교행위는 ‘율법 전체’에 녹아 있는 ‘대속의 은혜’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된 ‘대신 값을 지불한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종교행위, 윤리, 헌신, 봉사, 노력일 뿐입니다.


3. 이 ‘대속의 은혜,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니 ‘유다’도 ‘바벨론’도 그냥 멸망의 길로 달려 간 것입니다. 그토록 다시 돌이켜 ‘십자가로, 대속의 은혜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종말로 향해 간 것입니다.

유다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다.”라는 의로움에 빠졌습니다. 바벨론의 왕은 “‘여호와’라는 신적 존재도 나를 도구로 사용한 것을 보니 내가 위대한 왕이 맞긴 맞구나.”라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이런 ‘종교성으로 포장된 사람의 의로움’은 ‘교만, 무자비, 포악, 강포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5절의 기록처럼 족함 없이 욕심을 넓혀갔습니다. 이런 ‘바벨론’의 행동은6~8절의 기록처럼 ‘스스로 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멸망할 때 주변의 그 어떤 나라도 돕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믿음’을 종교적 결과물을 얻기 위한 신념 수준으로 격하시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안에, 그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깊은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된 본성’을 정직히 인정하며, 낮은 마음의 자세로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의 삶의 방식, 종교인의 삶의 태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정직한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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