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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5월 27일 2020년 수요일 묵상

본문: 하박국 1장 1~11절


1. 기독교인(특히, 한국 기독교인)에게 하박국서는 친근하지 않은 듯 친근한 성경입니다. 그 이유는 ‘찬양곡(복음송)’ 중에서 하박국서의 구절을 인용하고,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체의 내용은 몰라도 곳곳에 익숙한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곡이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하박국 3장 17~18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하박국 3장 19절’, ‘물이 바다 덮음 같이(하박국 2장 14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가사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전체의 모티브와 도입부의 성경낭송이 인상적이었던 ‘부흥(고형원 작사, 작곡)’이 있습니다.

이렇게 ‘찬양곡’의 가사로 많이 인용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지서 자체가 시문학 형식을 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장의 배경으로 봤을 때, 하박국 자신이 찬양(작시)을 담당했던 레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서는 역사적 배경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와 고대근동의 전통의 강자였던 ‘애굽’을 완전히 복속 시키고 패권을 장악한 신흥국 ‘바벨론’이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6절의 “갈대아 사람”은 ‘바벨론 사람’입니다. 6~11절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바벨론의 포악함과 잔인함, 교만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학자들은 기록시기를 바벨론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멸망시킨 ‘BC 612’년 전후부터 유다가 멸망한 ‘BC 586’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2. 하박국의 시작(1절)에는 ‘경고’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원문에는 ‘경고’가 첫 단어입니다. “그 경고, 하박국이 본”이라고 번역하면 히브리어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두려움을 주기 위한 위협(?)이 아닙니다. “너 말 안 들으면 가만히 안 둬!”라는 뉘앙스가 아닙니다.

“경고”로 번역된 ‘massa’는 ‘신으로부터 임하는 메시지(신탁)’, ‘어떤 엄중한 말을 입 밖에 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짐, 부담, 의무, 책임감’, 영어의 ‘burden’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멸망 길로 가는 남유다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아픔’과 ‘하박국 선지자의 애통함’이 담겨 있습니다. 말해야 하는데 차마 말할 수 없는 ‘하박국 선지자’의 내적, 영적 갈등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아무리 열변을 토하고, 수려한 말을 하고, 정확한 지적, 논리적 전개의 메시지를 전해도 이런 ‘애통함, 영적 갈등, 내적 부담’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 지도자’들의 ‘설교, 메시지 전파 등’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런저런 이유로 판단, 분석,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5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누가 봐도 악하고, 누가 봐도 불의하고, 누가 봐도 패역하고, 누가 봐도 잘못 했더라도’ 우리에겐 그들을 향한 ‘영적 안타까움, 내적 책임통감’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저 역시, 대속의 은혜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법이 없다면 죄인의 모습 그대로 방치될 존재입니다.”라는 철저한 자기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자칫 4절의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를 ‘기독교 윤리, 도덕’에 국한하여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기독교 윤리, 도덕’은 당연히 지켜져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4절에서 말한 “율법이 해이하고”는 율법이 느슨해진 정도가 아닙니다. 마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대속의 은혜’를 제대로 이해하고, 멸망 길을 떠나 살리시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더 슬픈 것은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종교로 삼는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속에 녹아 있는 ‘대신 속죄함(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놓쳤습니다. ‘껍데기 종교 예식, 알량한 종교 윤리, 허망한 종교 권력’에 취해 있었습니다.

이런 ‘남유다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하박국’은 괴로웠습니다. 얼핏 읽으면 “패역한 저들을 심판하소서.”로 보이지만, 하박국의 마음은 하나님의 아픈 마음과 닿아 있습니다.

‘부흥’을 바라십니까?! 내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흘러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 간절함이 흘러 들게 하기 위해, 내 영혼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자기 우상화’를 위한 ‘의로움, 패역함, 탐욕, 죄악’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 영혼의 패역함, 그 영혼의 황폐함, 이 땅의 황무함’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부흥)’이 임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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