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14장 1~19절
1. 계속 반복하여 말씀 드리는 것처럼 성경이 말씀하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이며, 그 은혜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잊지 않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마음 중심에 놓고 잠언을 묵상하면 기독교 윤리로 표현되는 삶의 열매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삶의 열매가 드러나도 인간의 의로움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붙들린 삶, 내가 아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 성경이 인정하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의 길을 걷는 것은 꽃길이 아닙니다. 아프고 힘듭니다. 이런 영혼의 각오가 있다면, 주저리주저리 적은 저의 묵상을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도망치지 마십시오. 성경을 펼쳤으면 말씀의 검으로 심령이 수술되야 삽니다.
2. 잠언은 ‘나’라는 인간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서 하늘의 복(?)을 받아 이 땅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지혜가 담긴 인생 지침서가 아닙니다.
잠언은 범죄한 나는 죽고, 내 안에 진정한 의로움과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나 대신 사는 생명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살게 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살지 못하는 나를 인정하며 읽어야 합니다. 어제 그렇게 살았다고 만족하면 안 됩니다. 오늘 십자가에 붙들리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사람임을 철저히 인정하며 읽어야 합니다.
“나는 지혜롭지 못합니다. 나는 정직할 수 없습니다. 나는 미련한 자입니다. (1~3절) 하지만, 이 고백을 악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저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내 안에 이미 능력으로 계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결단하며 오늘을 살겠습니다.”라는 기도와 믿음의 선택을 하며 읽고 행해야 합니다.
3. 저는 이런 기도 없이 성경을 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만 해도 1절부터 걸립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가정(자기 집)을 세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장이신 예수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옳다고,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내려놓고 엎드려 주님의 다스림이 가정에 임하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6절의 기록처럼 ‘거만한 자’가 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뭔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 착각을 내버려둬서 생각의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말로 쏟아 놓게 됩니다. 그 결과는 3절이 됩니다.
4.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영적인 민감함이 더해집니다. 미련해질 수 없습니다. 미련하다는 것은 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대속의 은혜에 붙들린 사람은 영적인 민감함이 작동합니다.
자신의 어떠함,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예민해집니다. 자기가 걸어가는 길이 보입니다. 작은 죄악조차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7~9절)
9절의 “심상(尋常)히”는 ‘가볍게 여기다. 하찮게 여기다’입니다. 히브리어(loots) 뜻은 더 심합니다. ‘비웃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의 마음을 계속적으로 씻어내고, 도려내지 않으면 굳은 살이 배이고, 손발톱이 자라듯 영혼이 무뎌 갑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다 못해, 우습게 여깁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죄는 도덕, 법률 기준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의 주인 된 모든 삶의 태도와 영혼의 상태가 죄입니다.
5. 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제발 우리 심령의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걷는 길, 쏟아내는 말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러고 있는 나를 너그러이 대하지 마십시오. 괴롭지만 엎드려 죽을 것처럼 기도하며,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나를 쳐 복종시키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말씀에 나를 굴복시키는 순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은 본문에 대한 주해가 거의 없는 묵상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이런 마음의 음성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싫어서 안 지키는 것이다. 아니, 너는 말씀을 순종할 어떤 능력도 없다. 그러면서 순종하는 척, 지킬 수 있는 척 거짓말하지 말아라. 죄인된 너의 본성을 숨기려 다른 것으로 덮지 말아라.”는 심령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몰라서 못 지키십니까? 지키기 싫으신 겁니까? 빨리 답하지 마시고, 조용히 기도의 자리로 가십시오. (물론 기도의 자리조차 도피처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지혜롭고, 괜찮은 줄로 스스로 속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누가 가장 위험한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죄성에 기울어진 나에게 스스로 속지 않기 위해 오늘도 십자가를 붙들고 말씀으로 내 심령을 도려내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임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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