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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5월 19일 2022년 목요일 묵상

본문: 사무엘상 8장 1~22절


1.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제 자신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 끌리고,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바보 같은 제 모습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쓰는 데 다른 나라 언어로 쓰는 것 같은 갑갑함이 느껴졌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 꺼낸 말, 5절의 기록이 더 참담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는 핑계(?)입니다. 빌미일 뿐입니다.

이것을 발판 삼아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왕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왕을 세워 달라고 말하는 속마음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하나님이 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식으로 다스리지 마십시오. 온전한 통치가 아니라, 나의 필요에 따라 당신의 위대한 능력만 있으면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2. 이것은 ‘선악과 사건’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자신의 왕이 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은 너무 좋습니다. 거기서 먹는 각종 나무열매도 마음에 듭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먹고 싶지 않을 때 안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딱 하나를 못하니 답답해집니다. 저건 도대체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하게 맛있게 보여서 ‘선악과’를 건드린 것이 아닙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왕이 세워지면, 맘대로가 가능합니다. 백성들의 여론, 흔히 말하는 ‘민심(民心), 사람 마음’이 작용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입김이 왕을 흔들어 댈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왕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왕이시면 그게 불가능합니다. 아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게 안 통한다는 것을. 그것도 너무 잘 압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3.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 되심,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힘이 센 하나님, 능력이 많은 하나님,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내 맘대로 움직여 줄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나의 종교적 노력과 행위(기도, 봉사, 헌신, 교회 출석 등등)에 기분 좋아지신 하나님이 그 대단한 신적인 능력을 내가 원하는 것에 발휘해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다스림, 왕 되심’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면 가장 먼저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내 맘대로 살고 싶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그 불편함’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지금도 ‘그 불편함’ 가운데 계십니까? 앞으로 계속될 ‘그 불편함’을 기대하십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직접 통치는 싫고,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으니 교묘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합니다.

왕이 없는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눈에 보이는 것들, 손에 잡히는 것들, 육체로 누리는 것들’을 얻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얻으려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로 얻으려 합니다.


4.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으로 포장했을 뿐 똑 같은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모든 나라와 같이 왕을 세워주소서”라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본심을 알고 계십니다. “왜, 교회 나오는지… 왜, 예수 믿는 시늉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7절 이하의 하나님의 마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간 왕이 행할 일들(10~18절)을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분노가 아닙니다. 화가 나셔서 ‘당해봐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정신 차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9절에 분명히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라고 기록합니다. 그때 들었으면 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무턱대고 ‘다윗 왕을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윗 왕 예찬론(?)’에 빠지면 안 됩니다.


5. 왕 제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허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왕 되신 하나님을 그들(또 우리가)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사울을 볼 때 지나친 적대감(?)을 버려야 합니다. 그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반대로 다윗이라는 인물을 볼 때 다윗 ‘왕’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무엇보다 ‘목동 다윗을 왕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오히려 다윗을 볼 때, 설명 불가능한 하나님의 사랑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싫어 버리고, 인간 왕을 세워 달라고 했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진정한 왕으로 우리 안에 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사랑이 보여야 합니다.

“나를 버린 너희, 나의 다스림과 왕 됨을 싫어한 너희를 향해 다시 찾아가겠다.”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무엘상 4~7장, 8장, 또 앞으로의 내용’이 복음이 됩니다.)

이런 나에게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 이런 나를 위해 먼저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붙들린 것이 저와 여러분의 참 능력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8절)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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