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10장 1~17절
1. 잠언 10장은 대조를 통해 내용을 끌어갑니다. 전체적인 대조는 지혜를 소유한 악인과 어리석음을 소유한 악인입니다.
이제는 1절을 읽으시면서 “그래, 이 말씀으로 내 자녀를 가르쳐야겠다. 지혜로운 자녀, 부모에게 근심을 주지 않도록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자녀를 양육해야겠다.”라는 단편적인 이해를 하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이런 단순한 이해와 적용으로 자녀를 훈계하다 보면, 오히려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녀들의 마음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지혜로우시길래 그러십니까?”라는 식의 반감이 들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것 때문에 늘 조심스럽습니다.)
2. 잠언을 읽어보면 너무 당연한 듯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지만 잘 안 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겁니다. 어쩌면 이런 말씀이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성향 혹은 타고난 천성으로 행한 것들과 잠언 등의 내용이 비슷하면 괜히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복을 받지’라는 해괴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그래서 오늘 말씀에 기록된 ‘지혜, 의로움, 사랑 등’을 인간의 언어, 사상, 문화 체계에서 받아들인 개념을 버려야 합니다. 글자를 그렇게 썼을 뿐, 성경 속에 담긴 참 의미를 붙들고 봐야 합니다.
가장 먼저 1절의 ‘지혜로운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숨통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한 죄인의 구원, 십자가에서 죄 없는 아들 예수를 대속의 제물로 드리심으로 사랑과 공의를 완성하시려는 성부(聖父)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자(聖子) 예수님’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유일한 기쁨입니다.
4. 우리는 잠언을 볼 때마다, 아니 성경을 볼 때마다 ‘의인’과 ‘지혜로운 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저 ‘의인이라 칭함 받은 것’ 뿐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십자가로의 초청을 ‘주신 믿음(내게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으로 ‘완전한 의로움’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것뿐입니다.
5.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내가 죽어야 할 십자가에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것’을 ‘의로움’으로 ‘여겨 주신 것’을 착각한 것이 문제입니다.
본질은 여전히 죄인인데, 의인이라 칭해주신 은혜, 여겨 주신 은혜를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자기가 의로운 줄 압니다. 정말 자기가 대단한 줄 압니다. 말로는 신학적 수사를 줄줄 읊어 댈 뿐, 삶의 태도와 자세는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손이 뚫리고, 발이 찍히는 고통이 있어도 매일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될까 말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한 순간 한 순간, 기도하는 한 마디 한마디,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십자가의 필터’로 걸러져야 합니다.
6. 그렇게, 매일 좁아도 바른 길,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굳이 저렇게 살아야 돼?”라는 흘기는 눈빛, 비아냥 거림을 들어도 걸어야 합니다. 넘어져 무릎이 터지고, 살이 파여도 걸어야 합니다. 잠시 지쳐 엎드릴 지 언정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9~11절)
여전한 육신의 습관과 생각, 질긴 죄성의 굴레를 쉽게 보지 마십시오. 사실, 내 힘의 어떠함으로 안 됩니다. 그래서 죽으면 산다는 십자가의 진리를 믿고 ‘이런 나, 그것 앞에 지독히 연약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에서 멈추지 마시고, 내가 죽을 때 내 안에 예수님께서 나 대신 사시는 것을 믿고, 담대하게 끊어내십시오!
7. 그래야, 진짜 하늘로부터 임하는 부요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불안함을 이기기 위해 이 땅의 부요함으로 채우려는 허망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나의 부요함, 나의 풍성함, 나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않습니다. 풍요한 듯 보이지만, 채워도 채워도 궁핍해지는 허망한 것들에 영혼을 팔지 않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은 말 그대로 필요의 수준에서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신 것에 대한 깊은 감사와 진정한 부유함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참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15절 이하는 이 마음으로 보면 답이 나옵니다. ‘부자의 재물’은 예수님이 주시는 참 생명, 소망, 풍성함입니다. 그 풍성함, 생명, 소망을 가진 저와 여러분은 진짜 부자입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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