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6장 20~35절
1. 오늘 본문에는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간절함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21절은 ‘신명기 6장 4~9절’의 축소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3절은 ‘시편 119편 105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신명기와 시편을 읽어보십시오.)
그 옛날 솔로몬이 되어 보십시오. 오늘 본문의 서론이라 할 수 있는 20~23절을 기록하는 솔로몬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신명기와 시편의 말씀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적어도 왕세자로 책봉된 뒤에는 더 철저하게 성경에 관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아는 것과 행한 것이 달랐습니다. 가야할 방향과 걸어간 방향이 달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생명의 길을 가야하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 그가 걸어간 길은 반대였습니다. (물론, 돌아왔습니다. 너무 빙빙 돌았지만, 돌아오긴 돌아왔습니다.)
2. 오늘 본문 24~35절을 문자적으로, 기독교 윤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24~35절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 기준에서도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람 사이의 질서, 인격, 관계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결혼이라는 테두리를 통해 허락된 배우자 외에 다른 여성(남성)을 따라가는 것은 자신과 가정, 심지어 상대방까지 몰락시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솔로몬은 누구보다 이 결과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유혹의 달콤함과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욕망의 뜨거움을 실제 경험한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27~28절은 그 때, 이방여인들을 품었던 자신의 심리 상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길이 아니라, 사망의 길을 걸으며 “나는 아닐 거야. 별 일 있겠어? 정치적 안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 아니야?”라며 애써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던 마음의 태도를 깊은 반성과 회한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3. 저를 비롯한 모든 인간이 엉뚱한 길을 갈 때, 다 이런 심리상태를 가집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괜찮을 거야…’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이라는 포장지를 덧씌우면 완벽해 집니다.
저도 이런 식의 실수와 삶의 태도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비슷한 유혹을 받습니다. 제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 정당화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유를 대라면 천가지도 넘습니다…
그럴 때,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참 용기입니다. 사는 길입니다.
이것이 너무 힘든 것 압니다. 힘들고 어려우니 엎드리는 것입니다. 엎드려 위로부터 임하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4. 솔로몬은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22~23절에도 드러납니다. 솔로몬은 성경 말씀,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몰랐던 사람이 아니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생명의 길이 어느 방향인지, 등불, 빛이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살아간 삶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너무 잘 아는 자신감과 주변에 풍요, 칭송, 잘 나감 등이 축복의 증거(?)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취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라고 예외일까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말하는 것과 실제 걸어간 방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말씀대로 못 살고 있습니다. 그걸 안타까워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 혹은 자기가 행하는 종교행위 등으로 덮으려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에 더 목마른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런 낮은 마음에 위로부터 흐르는 생명수가 젖어듭니다.
5.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회한 섞인 잠언을 기록하는 것도 좋은데… 그냥 ‘생명의 길’을 걸어간 실제 삶으로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그가 걸어간 겸허한 생명의 발자취와 인생을 다른 사람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여 성경이 기록되었다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변 사람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삶도 동일해야 합니다. 성경과 십자가 복음을 아는 삶이 아니라, 그 말씀과 십자가 은혜가 가리키는 삶의 발자국을 통해 그들 심령에 ‘십자가 생명’이 기록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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