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6장 1~19절
1. 오늘 본문은 중요한 교훈들이 많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현명한 선택, 마음의 결단, 삶의 태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절은 담보와 보증에 대한 현명한 판단과 선택입니다. 6~11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이며, 게으름을 이길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12~19절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거짓되고 교만한 삶의 자세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삶의 지혜와 삶의 태도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것들로 인하여 내 삶에 따라오는 결과가 있습니다.
1~5절에 기록된 보증의 문제, 6~11절의 게으름의 문제는 ‘경제적 문제’와 직결됩니다. 12~19절에 기록된 마음의 패역, 교만, 거짓의 문제는 ‘인격의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2. 무분별한 보증, 인간적인 감정에 이끌린 보증 등은 정말 위험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채무를 완전히 갚을수 있는 여유와 능력이 없으면서 함부로 보증을 서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사람도 잃고 돈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게으름이라는 인간의 약점이 방치되었을 때의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게으름에 대하여 좀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게으름의 반대가 부지런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으름과 부지런함도 상대적입니다. 어떤 것에 있어서는 그렇게 부지런하지만, 또 다른 것에 있어서는 게으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관심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있어서는 부지런함이 작동합니다. 그 반대의 것들에 대해서는 게으름이 밀려옵니다. 무관심, 귀찮음과 함께 밀려옵니다.
3. 이것이 인간의 간사함입니다. 자기 중심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교만과 거짓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어떠함에 따라 내 마음의 상태는 달라집니다. 내 이익과 관련된 것에는 거짓이 섞여 있어도 모른 척합니다. 거짓의 농도를 조절합니다. 거짓 앞에 눈을 질끈 감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보면서도 ‘난 보증 안 섰으니까. 난 부지런하니까. 난 겸손하다는 말을 들으니까. 그래도 난 거짓말까지는 안 하니까.’ 등등의 상대적 자기 의로움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4. 오늘 본문은 기독교윤리적 해석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기독교 윤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 윤리에 합당한 삶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담보와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요? 경제적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잠시 대답을 멈춰 보십시오.)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담보와 보증을 설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요? 네,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군가의 채무를 대신 갚아줄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정했습니다. 물론,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맘대로, 우리 재산 혹은 경제규모의 어떠함만 믿고 담보와 보증을 서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우리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면, 우리가 누리고, 사용하고, 소비하는 모든 것은 빚입니다. 빚은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빚낸 이유에 맞게, 절제하며 사용해야 합니다.
5. 담보와 보증을 설 수 없는 두번째 이유입니다. 이것도 ‘빚진 자의 신분’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도 예외 없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에 빚진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은 생명에 빚진 자들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죄성에 물든 인간의 한계를 압니다. ‘구원 받음’이 얼마나 큰 빚인 줄 압니다. (3, 5절의 “스스로 구원하라”는 반어법입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겸손하기 위한 겸손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태도를 보면 내 안에 내가 사는지, 예수님이 사시는지 보입니다. (자기가 더 잘 압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보입니다. 모르면, 참 불행한 것입니다.)
교회는 빚진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빚진 자는 누군가의 신앙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에서 오는 그 어떤 종류의 우월감에 빠질 수 없습니다. 수준 운운할 수 없습니다. 교만은 빚진 자의 심정을 잃어버릴 때 밀려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십자가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 그 마음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기 허영에 빠져 어리석은 담보와 보증을 서지 않습니다.
십자가 생명에 빚진 사람의 마음으로 살면 매일 새로운 생명으로 눈 뜬 하루를 게으름 혹은 자기 이익에 빠진 부지런함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십자가 은혜에 빚진 사람의 태도로 살면 교만한 심령의 태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낮고 낮은 은혜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 생명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빚 질 일이 없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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