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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8일 2021년 목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2장 1~10절


1. 오늘 본문은 ‘모세’의 탄생과 극적 생존에 대한 기록입니다. 유아 학살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막기 위한 ‘헤롯 대왕’의 유아 학살 사건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가장 어둡고, 막막한 그 순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시간, 방법, 결과’가 아니라, ‘나의 시간, 방법, 결과’에 맞춰 구원이 일어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시간, 방법, 결과’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2. 이 본문은 ‘갈대상자’와 ‘나일강’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통한 극적인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본문 속에는 ‘나일강’이라는 세상의 환란, 풍파, 역경 등에서 저와 여러분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품으심을 ‘갈대상자’를 통해 말씀하는 것이 분명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 심지어, ‘포기하는 것’까지 연결되야 합니다.

고대 사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태어나면 그 동네 주변에서 살았다가 죽었습니다.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일강’이 지중해와 연결된다는 것도 모릅니다.

네, 이 길고 긴 강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강’에 떠내려 보내는 것은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포기’를 의미합니다.


3. 우리는 이 본문을 다시 좀 살펴봐야 합니다. 관점을 조금만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물에서 건짐 받게 된 진짜 원인,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구원의 시작이 누구의 손에서, 누구의 결단에서 시작되었습니까?

네, 바로 ‘모세의 어머니(요게벳)’이었습니다. 1~2절의 기록 그대로 말한다면 ‘임신한 레위 여인, 석 달 동안 그 아이를 숨겼던 여인, 갈대 상자에 아이들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던 여인’의 결단 때문이었습니다.


4. ‘모세의 어머니(요게벳)’은 태어난 아기를 보고 뭔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잘 생긴 것(2절)”이라는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좋은(good)’이라는 뜻의 ‘towb’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너무 ‘영적 감동, 신비적 감동, 특별은총적 감동’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어머니에게 아이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석 달을 감춰 길렀으나,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모세의 어머니’는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바른 ‘갈대 상자’에 아이를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 둔 것(3절)”은 ‘맡기는 것,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5. 물론, “갈대 상자를 ‘갈대 사이에 둔 것’은 ‘바로의 딸(공주)’가 목욕하러 올 것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렇게 설교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가능성에 의지한 것입니다. 게다가 ‘바로의 딸’이 그 아이를 히브리 아이라고 죽일 수도 있고, 방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그 분은 모든 역사의 시작은 ‘내려놓음, 맡김, 포기’에서 출발합니다. 거머쥐고, 붙들고 있고, 끌어안은 것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하늘 보좌 버리심, 육체를 입고 낮아지심, 생명을 포기하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6. 성령의 감동으로 ‘출애굽기’를 기록한 모세의 마음을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집안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이름마저 감춥니다. (요게벳의 이름은 민수기 26장 59절에 등장합니다. 그것도 남의 이야기하듯...)

1~3절을 가만히 읽어보면 아이를 갈대상자에 담아 갈대 사이에 숨기는 ‘그 여자(어미)’의 포기와 맡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맡기지 않으면 하나님은 일하실 수 없습니다. (이걸 아는데, 정말 잘 안 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포기하고 맡기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직접 일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맡기고, 포기하지 않으면 사람이 한 것인지, 하나님이 한 것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우리는 고민하고, 기도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내가 그것을 손에 쥐고 통제할 것인지, 아니면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예수님, 신실하신 성령님의 손에 맡겨 드릴 것인지를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1~3절의 사건이 매일, 매순간 일어나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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