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4장 53~72절
1. 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신 예수님은 유다의 최고 종교 권력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 가십니다. 그곳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불법 재판입니다. 55~56절을 보시면 ‘거짓 증인들’을 세웁니다. 그들의 증언조차 일치하지 않습니다. 참 우습고, 허탈하고, 참담한 재판입니다.
58절에 기록된 ‘거짓 증인의 거짓 증언’을 보십시오. 가만히 읽어 보시면 예수님의 말을 살짝 뒤틀어 위증하는 것이 나옵니다. 무엇일까요? “내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3장 2절의 문맥에서는 ‘성전이 무너질 것’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무너뜨린다는 말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성전 되심’을 강조하신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너희’를 ‘내가’로 바꿨습니다. 그렇게, 대속의 제사를 완성하셔서 친히 성전 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고, 우리가 영원토록 거할 집이 되신다는 ‘아름다운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을 대적하고, 고발하고, 죽이려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2. 결국 그들은 진짜같은 거짓 증언, 살짝 비튼 위증으로 예수님을 신성 모독이라는 죄명을 뒤집어 씌웁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분풀이에 가까운 침 뱉음, 구타, 모욕을 가합니다. (60~65절)
이런 일이 그때만 있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사람의 생각에 맞춰서 해석하고, 이용하여 ‘땅의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일, 그렇게 ‘생명’을 가장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 지금은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단, 사이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가까이, 내 주변, 바로 나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섬뜩할 정도로 무서워야 정상 아닐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내 심령을 비출 때 피하거나 골라내지 않는 것이 은혜인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신과 대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어두움을 직시해야 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더 붙들어야 합니다.
3. 오늘 본문에 ‘이름’이 명확히 적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베드로가 아들처럼 아끼는 제자였습니다. 따라서 저자인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종의 ‘감수’는 분명 ‘베드로’가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도망자, 배신자’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일까요? 54절의 “불을 쬐더라”와 67절의 “불 쬐고 있는 것”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54절은 “열을 얻기 위해 ‘그 빛’을 행했다”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즉, “불”은 ‘빛(light)’를 의미하는 ‘phos’가 있습니다. 반면 57절의 “불 쬐고 있는 것”을에서는 ‘열(heat)을 쬐다’는 의미의 ‘thermainomai’만을 사용하여 기록했습니다. 네, 57절에는 ‘빛’이 없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기록은 제한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께서 저자를 감동하여 기록하실 때는 작은 것에도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도망, 부인, 배신’의 진짜 원인은 ‘빛’의 유무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전의 베드로는 그저 예수님을 ‘자신의 추위(부족, 결핍, 소원, 바람 등)’를 따스하게 해줄 (채워줄) ‘열(heat)’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마침내 ‘성령의 빛(phos)’으로 오셔서 ‘베드로’ 안에 어둠을 비춰 주실 때 비로소 ‘빛으로 오신 예수님, 빛을 주시기 위해 먼저 지신 십자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더 이상 예수님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삶은 십자가에 못박혀 주님께 이끌림 받는 삶으로 변화했습니다.
‘빛’이 내게 임한 최고의 증거는 ‘보이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혼돈, 자아로 어두워진 내 영혼이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빛이 비췰 때 특징이 또 하나 있습니다. 도망갈 수 없습니다. 내 손을 잡고, 나를 품고 비추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빛을통해드러나는것은부끄러움이아닙니다. 도망칠것이아닙니다. 숨길것이아닙니다. 빛비추심이생명, 능력, 사랑, 은혜인줄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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