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1장 1~22절
1. ‘출애굽기’라는 제목 때문에 ‘창세기’와 단절된 성경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연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50장 26절’과 ‘출애굽기 1장 8절’ 사이의 역사적 시간은 약 400년이 흘렀지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의 당사자’이며, 동시에 ‘지도자’였던 ‘모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1~5절을 기록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기억하라!”입니다. “창세기 15장 13절 이하를 기억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8절 이하를 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기억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과 ‘산파들’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에 대하여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애굽(이집트)의 왕조는 수없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약 30여개의 왕조가 흥망했습니다.)
성경 학자들의 견해 및 정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셉을 아는 왕조(이스라엘에 관대했던 왕조)’는 셈족 계통으로 애굽을 점령하여 다스린 ‘힉소스(Hyksos) 왕조’로 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애굽의 본토인으로서, 이방인이었던 힉소스 왕권을 무터뜨린 ‘제 18왕조’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18왕조의 세번째 왕이었던 ‘투트모스(Thutmose) 1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거운 노동을 시키고(11~14절),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 사내아이들을 학살하기 위한 계략(15~22절)을 강행합니다.
3. 여기서 ‘새 왕’을 악인으로 단정짓는 마음을 좀 내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기억하지 못함(요셉과 요셉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의 결과는 두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두려움은 하지 말아야할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그 행동을 가만히 보면 앞뒤가 하나도 안 맞습니다. 마구잡이 입니다. 오히려 더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합니다.
9~10절을 가만히 읽어보십시오. 참 복잡한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가 많다. 저대로 두면, 전쟁 때 적국과 손잡고 우리와 싸울 것이다.’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에서 나갈까’ 두려워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노동력’이었습니다. ‘노동력’은 곧 ‘국력’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작정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데리고 있을 수도 없었던 ‘새 왕’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유아학살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 선택 역시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 인구의 감소’를 가져옵니다.
4. 두려움이 근원이 된 삶의 선택 혹은 몸부림은 오히려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어리석은 삶의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은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옥가지 않기 위한 어린 아이의 단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말하는 축복을 받지 않으면 내 삶이 힘들까 두려워서 예수님을 믿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천국의 소망은 지옥의 절망 혹은 두려움의 반대 개념이 아닙니다. 천국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받고 싶고, 이루고 싶은 모든 것들의 시작이 ‘나의 간절한 원함’에서 출발하면 안 됩니다. (사실, ‘그것을 이루고,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이걸 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소망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5.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경외한 산파들이 받은 축복’에 시선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의 두려움에 주목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근원이 되어 선택한 그의 어리석은 결정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선택과 결정을 합니다. (생각 하나, 말 한마디도 선택과 결정입니다.) 그때 십자가 앞에서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산파들은 늘 행하는 자신의 일 앞에서 하나님을 기억했기 때문에 이 땅의 삶에 영향을 주는 왕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내 안의 두려움이 원인이 된 모든 선택과 결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되고, 바로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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